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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알바 걸려도 탈락 … 기초수급 134만 명 사상 최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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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기초생활보장수급자(이하 기초수급자)가 134만 명으로 줄었다. 2000년 10월 생활보호제도를 전면 개편해 기초수급자 제도를 도입한 지 14년 만에 가장 적다. 그런데 이게 고약하다. 살림살이가 나아져 극빈층이 줄어들었다면 박수 칠 일이지만 그게 아니 다. 2010년 사회복지통합관리망(사통망)을 가동하면서 부적격자를 대거 걸러내 온 게 주요 원인이다.

자녀 소득 증가 때문에 기초수급자에서 탈락한 충남 예산의 한 노인이 성경책을 보고 있다. 방이 어두운데도 전기세를 아끼려 불을 켜지 않았다. [중앙포토]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0일 보건복지부가 새정치민주연합 남윤인순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 6월 말 현재 기초수급자는 134만3311명이다. 2000년 이후 기초수급자가 가장 적었던 때가 2002년 135만 명인데, 이번에 그 밑으로 떨어진 것이다. 기초수급자는 2002년 이후 줄곧 늘어나 2009년 156만8533명까지 증가했다. 그러다 2010년 사통망 가동 이후 줄곧 감소했다. 2011년 23만여 명, 2012년 21만여 명이 탈락했다. 올 상반기에만 8만 명가량 줄었다.

 지난해 기초수급자 본인과 가구원, 부양의무자(자녀)의 소득·재산 증가가 원인이 돼 탈락한 사람이 전체 탈락자의 절반가량 된다. 소득·재산 증가는 사통망이 가려낸 것이다. 일을 해서 자활(자립)에 성공해 기초수급자에서 벗어난 사람은 2087명이다. 사통망에는 복지 대상자 1600만 명의 소득·재산 자료 48종이 들어 있다. 1년에 두 차례 변동 현황을 조사한다. 기초수급자가 되려면 본인(세대원 포함)의 소득·재산이 최저생계비 이하여야 하고, 부양의무자인 자녀(부모일 때도 있음)의 소득이 월 470만원(부모+자녀 4인가구)을 넘지 않아야 한다.

 지난해 8월 기초수급자에서 탈락한 50대 여성 김씨는 본인 가구의 소득 증가가 원인이었다. 그는 18년 전 남편이 교통사고로 숨지고 아이를 키우면서 살았다. 당뇨·고혈압에다 심장이 좋지 않아 스탠트(혈관 확장용 그물망)를 5개 삽입하느라 병원비를 빚졌다. 얼마 전 둘째 아들이 제대해 엄마 빚을 해결한다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소득이 사통망에 걸려 탈락했다. 김씨는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데, 도움을 청할 데가 없다”고 말했다.

 따로 사는 자녀나 부모, 즉 부양의무자 때문에 탈락한 경우도 있다. 충남 천안에 사는 50대 송모씨는 지난해 아내와 이혼한 뒤 중학생 아들과 같이 산다. 지난해 9월 기초수급자가 돼 생계비 일부와 아들 학비를 지원받다가 올 5월 탈락했다. 이혼한 전처의 소득이 늘어난 게 확인돼서다. 현행 법률은 기초수급자인 아들의 생모를 부양의무자로 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미곤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해 왔지만 사통망이 걸러내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기초수급자 수가 역대 최저가 됐다”며 “부양의무자 기준과 기초수급자의 재산 기준(소득환산율)을 대폭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소득이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데도 부양의무자 규정에 걸려 보호를 받지 못하는 극빈층이 250만 명에 달하는데 이들을 보호하는 게 급선무”라고 덧붙였다.

 복지부 임호근 기초생활보장과장은 “국회에 계류돼 있는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 등 ‘세 모녀 관련 3개 법안’이 통과돼 맞춤형 급여체계로 바뀌면 혜택을 하나라도 보는 기초수급자가 37만 명가량 늘어난다”며 “국회가 하루빨리 법률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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