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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인 간된 아내 병간호 3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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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며칠 전 친정 큰어머니가 오랜 병고 끝에 돌아가셨다.
위암에 덧붙여 골수 암이라는 진단을 받고도 몇 년을 더 생명을 버티어 온 것은 오로지 큰아버지의 지극한 정성 덕이었다.
4남매를 두어 모두 장성해서 가정을 가졌지만 큰아버지는 어느 한 자식에게도 병자를 맡기지 않았다.
당신 혼자서 멀리 부산에 아파트를 마련해 이미 식물인간이 되어 버린 병자를 대소변을 받아 가며 3년을 더 살게 하였다. 행여 어느 며느리나 어느 자식이 병자에게 얼굴이라도 찡그릴까 봐서인지는 몰라도 하였든 그렇게 멀리 떨어져서 병자를 간호했었다.
당신이 열심히 뛰어 자식들 모두에게 남부럽지 않게 해주고 나머지 돈은 아낌없이 눈만 멀거니 뜨고 있는 병자를 위해 식물인간이 되어서라도 숨만 쥐어 달라는 식으로 주사로 생명을 연장시켜 왔다.
병자의 눈동자의 움직임을 보고 원하는 것을 척척 알아서 병자를 다루었다.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움직이면 대변을, 눈동자가 아래로 처지면 소변을, 목젖에 약간의 파동이 일면 물을, 그리고 순전히 영양제 주사로 시간을 연장시켜서 하루라도 더 함께 살아보겠다는 집념으로 석 달의 시한부 생명을 삼 년을 더 연장시켰다.
『차라리 병자를 위해서라도….』
주위에서 들 이렇게 권고를 할라치면『아니오. 이렇게 라도 살아야 돼요.』
그 말씀 한마디뿐이었다.
큰어머니가 건강하셨을 때 부부가 손잡고 오르내리면서 가꾸어 온 자신들의 묘소인 부천 장지까지 부산에서 올라와 차에서 내리시는 큰아버지의 모습은 흡사 고고한 한 마리의 학처럼 보였다.
우리는 울음을 잃고 큰아버지의 그 우아한 몸놀림과 이미 모든 것을 탈한 모습에 그저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차라리 울음소리 같은 건 큰아버지에겐 한남 시끄러운 소음으로 들릴 것 같았다.
모든 사람들은 크게 소리내어 울지 못한 채 그저 눈물만으로 장례를 치렀다. 소리내어 울기엔 큰아버지 앞에서는 그저 모두가 부끄러울 뿐이었다.
나는 그때 큰아버지를 지켜보면서 부부란 바로 이런 것이어야 하는구나 하는 어떤 충격이 가슴을 쳐 왔다.
부부란 사랑의 열정만일 수도 없고(열정은 식으면 그만이니까) 그렇다고 주어야 받고 받아야 주는 타산일 수도 없고, 더구나 욕심 같은 것이 있어서도 안 된다는 것, 모든 것을 탈한 상태, 인간의 입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절대의 상태, 그 상태를 향해서 손과 손을 맞잡고 자꾸자꾸 오르다 보면 정상에 올라 완전히 합일될 때, 진정한 의미의 부부가 탄생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경지에 이른다면 부부로 맺어져서 최상의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박경자<경기도 안양시 석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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