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지만은 않은 외국 필름 러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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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기껏 주말에 한두편 이름뿐인 명화나 수사극 따위의 오락 영화가 고작이던 이전에 비하면 요즘은 가히 외화 팬들의 천국이라 해도 좋을 만큼 괜찮은 필름들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방송을 제작하고 내보내는 측에서 보자면 이런 현상이 결코 다행일 수만은 없을 듯.
물론 시청률 면에서야 안도의 숨을 쉴 수도 있겠지만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아예 우리 것을 기피하는 현상이 생기지 말란 법도 없겠다.
쉽게 KBS 제2TV 월요일 방송 프로를 보자. 하오 5시30분 만화 영화 『바다 소년 트리톤』, 6시15분 만화 위인전 『퀴리부인』, 7시 디즈니랜드 『백만불의 꿈』, 8시10분 과학 문명 발달사 『대포에서 TV까지』 등으로 5시30분부터 9시까지의 3시간30분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무려 2시간15분이 외국 필름으로 채워지고 있다.
게다가 이들 외국 필름들에 의해 급속도로 세련돼 가는 시청자들의 안목과 거북이 걸음을 하고있는 우리네 제작 기술 사이의 갭도 무시할 수 없는 일.
방영 첫날부터 아침 연속극은 반대 여론이 높았었다.
애초 아침이란 시간 개념에 연속극이 어울리지 않지만, 굳이 연속극을 내야겠으면 그 내용만이라도 생활 리듬에 맞는 것으로 해야한다는 의견도 많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뺀 칼을 다시 넣을 수 없다는 체면 때문인지 『은하수』 (KBS)와 『포옹』 (MBC) (둘 다 제목부터가 아침하고는 걸맞지 않는다)은 회를 거듭하고 있다.
서두엔 도시와 농촌의 두 가정을 대비시켜 살아가는 이야기를 보여줄 듯 싶던 「은하수」는 가출로 인한 중년 부부의 불화를 펼쳐서 역겹더니 자녀들의 결혼에 따른 옥신각신이 짜증스럽다가 이젠 고부간의 갈등이 서서히 고개를 내미는 것이 우리네 드라머의 고질은 골고루 갖출 모양.
아침부터 챙겨보기엔 혼자서도 낮 간지러운 것이 멜러 드라머 『포옹』. 그래도 젊은이들의 건전한 삶과 풋풋한 사랑이야기가 흥미로왔던건 사실. 그러나 요며칠 표변한 여주인공의 언행은 지어낸 이야기 속의 일이라 열번 접어생각해도 상식 수준을 많이 벗어나고 있다.
이왕 벌인 장단 갑자기 멈출 수 없다면 급한대로 저녁시간대로 옮기는 성의라도 보여야 하잖을까. 이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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