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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소비자가 물가 고삐 잡아야 할 때|쇠고기 값 등 자유화…소비자 운동자·주부 좌담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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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쇠고기 값 자유화로 금방 값이 뛰어 오른 것은 아니지만 값 상승을 예고하는 전조가 보이는 것 같아 주부들은 안타깝기만 하다. 쇠고기뿐만 아니라 공정거래법 시행 이후 알게 모르게 상승 곡선을 그려 가고 있는 물가를 피부로 느끼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 공정거래법 시행, 쇠고기 값 자유화 등에 따른 새로운 경제 시대를 맞아 소비자 운동 일선에서 일하고 있는 담당자와 주부가 앞으로의 대책을 의논해 보는 좌담회를 마련했다.
김은경씨=쇠고기 값의 자유화로 값이 오를 것이 예상돼 또 한번의 쇠고기 파동이 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쇠고기 값에 대해서는 공정 거래법이나 연동제라는 법 또는 제도 이전에 주기적인 파동을 먼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요. 쇠고기 파동은 우리들에게 낯선 이야기가 아니잖습니까.
최옥근씨=올해로 결혼 7년째가 되고 있어요. 그동안 3년 주기로 두번의 쇠고기 파동을 겪은 기억이 있으며 2년 전에는 직접 소비자 모니터로 정육점의 값을 조사하러 다니기도 했습니다. 정말 쇠고기 값은 법이나 제도로 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파동 주기를 감안한 정부의 근본적인 축산 시책, 그리고 유통 구조의 개선이 중요한 것 같아요.
조복자씨=쇠고기뿐만 아니라 돼지고기 파동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몇년전 시골에서 새끼돼지를 죽여 쓰레기장에 버린 사진들을 신문에서 보았어요. 그런데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돼지고기 값이 오르고-. 아무튼 일관성 없는 축산 정책 탓으로 주기적인 고기 파동이 오는 것은 분명한 것 같아요.
최=지난해 초 당국자와 만난 적이 있었는데 우리 나라에서 쇠고기를 자급자족하려면 2백만 마리의 소가 있어야 한다고 해요. 그런데 현재 우리 나라의 소는 모두 l백38만 마리에 불과하며 1년에 70만 마리를 먹어 치운다니 증식 없이 그냥 둔다면 2년만에 모두 없어져 버린다는 계산이더군요.
특히 회임 기간이 긴 소는 빠른 증식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어서 76년부터 쇠고기를 대량 수입해 왔으나 77년의 1백77만 마리의 한우가 지금 1백38만 마리로 줄었다고 하니 쇠고기 문제는 앞으로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더군요. 수입 쇠고기를 한꺼번에 많이 들여와 냉동을 시켜 두면 파동이 일 때마다 적당한 조정을 할 수가 있으나 우리 나라에 냉동 시설이 그만큼 되지 못해 그 대책도 어렵다는 이야기였어요.
왜 이전부터 낙농업을 장려하여 한우의 수를 늘리지 못 했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군요.
김=정책적으로 낙농업 장려는 그때마다 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 같은 지형에 낙농업은 큰 기대를 할 수 없는 것이고 그때마다의 낙농 장려도 임기 응변의 정책이 아니었을까 생각되는군요. 지금까지 장관 가운데 농수산부 장관이 가장 많이 바뀌었다고 하니 거기서 무슨 긴 안목의 정책을 기대할 수 있었겠습니까.

<쇠고기 선호도 높아>
아무튼 수요 공급 법칙에 의해 값도 당연히 오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이번 쇠고기 값 자유화는 이런저런 현실을 감안, 여러 가지를 노린 정책으로 풀이되더군요. 그 가운데 우리의 육류 소비 패턴을 바꾸어 보자는 의도도 있어요.
조=우리 나라 사람들의 쇠고기 선호도가 높다는 것이지요. 이웃 일본만 해도 쇠고기·돼지고기·닭고기의 비용이 17대 48대 35인데 우리는 23대 56대 21이라니 쇠고기 선호도가 무척 높은 것을 알 수 있어요. 쇠고기 선호도는 낮추고 다른 고기를 많이 먹도록 하는 것이 소비자를 위해서나 축산의 장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할 것 같군요.
사실 당국자들도 현시점에서 최선의 방법을 정책으로 택했을 것이고 가능한 한 누구나 그 최선의 정책이 좋은 효과를 거두도록 협조하는 것이 바람직 한 일입니다.
그러나 아직 상도의가 확립 안된 현실에서 상인들이 값만 올릴 가능성만 있으니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여기 올 때 정육점 몇군데를 둘러보고 왔는데 아직 연동제가 적용되고 있는 돼지고기 6백g 값을 고시 가격이 아닌 2천3백원을 받는 곳이 대부분이예요.
1천9백원이라고 가격을 표시한 점포에는 돼지고기가 없거나 비곗덩어리를 끼워 주고 있어요.
쇠고기가 약간 오른다는 것은 그 원인에 납득 가는 점이 있지만 돼지고기는 산지에서 l천2백원 정도라는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아닙니까.
또 쇠고기가 약간만 오를리도 없을 것 같다고. 고기 값이 오를 때마다 곧잘 불매 운동을 벌인 기억이 납니다. 앞으로 쇠고기 값이 오른다고 또 불매 운동을 벌려야 하는 건지, 사실 현실적으로 볼 때 불매 운동이 능사만은 아닌 것 같더군요.
김=물론 불매 운동은 능사가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불매 운동이 효과를 많이 얻었다고 장담할 수도 없어요. 성공 가능성이 l백20% 있을 때 불매 운동은 시작되어야 합니다.

<남성들도 참여해야>
식탁에 정기적으로 올라야 하는 쇠고기, 게다가 참여도가 낮은 소비자들을 감안하면 불매 운동이 과연 어느 정도 효과를 가져올까는 의문입니다. 때문에 앞으로는 소비자들끼리의 정보 교환이 무엇보다 큰 역할을 할 것 같아요. 소비자 단체의 시장 조사도 그런 동기에서 매주 행해지고 있어요. 값이 자유화됨에 따라 상점마다 값이 다를 것이고, 소비자들은 그들 상점 가운데 신용 있고 양심적인 곳을 찾아 서로 정보를 교환해야 합니다
최=백화점이나 슈퍼마키트에는 쇠고기를 등급으로 나누어 판매하고 있어요. 그러나 일반 정육점에서는 질이 좋건 나쁘건 같은 값에 팔고 있는데 이를 구분해서 판매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아요.
김=미국이나 유럽에는 모두 고기의 질에 따라 값을 매겨 팔고 있지요. 또 그 방법이 합리적인 방법이기도 하고요.
쇠고기 문제도 그렇고 공정 거래법으로 인해 자유화된 모든 시장 상품의 시장 감시 역할은 소비자에게 맡겨져 있는 현실입니다.
우리가 쇠고기 값 문제로 정부에 바라고 싶은 것은 우선 부당한 가격을 형성하는 요인, 즉 유통 구조의 개선과 그 감시를 철저히 해 달라는 것입니다. 상인들의 부당한 행위는 소비자가 감시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공정거래법 실시가 너무 앞당겨졌다는 비판이 많지만 이왕 시작된 새 법이니 효과를 거두도록 하는 방향의 건의가 좋을 것 같습니다. 공정거래법은 경제 현장이라고 할만큼 법 자체는 좋은 것이라 생각해요.
최=요즘 소비자 단체에서 부쩍 소비자 의식을 많이 부르짖고 있는데 왜들 그러냐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우리 앞에 어떤 것이 주어졌나를 실감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김=기업이 소비자를 조종하는 고삐를 잡느냐 소비자가 기업을 조종하는 고삐를 잡느냐는 중요한 시기에 서 있다는 것을 실감 못하는 것은 법이란 무형의 것이고 물가는 아는 사이 모르는 사이 슬금슬금 올라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소비자 운동을 적극적으로 펴 나가야 할 시기입니다.
조=살림을 꾸려 가는 주부라면 물가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어요. 서비스료의 인상으로 이발비·미용비 등도 가게에 타격을 주는 비목이 되고 있어요. 소비자 의식도 있고 소비자 운동에 대해 동감을 하면서도 생활에 너무 지쳐 체념하고 나가 떨어진 상태라고 할까요. 요즘의 물가는 주부들을 무기력하게 할만큼 심각하게 올라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김=그 물가를 소비자들이 조정하라는 법이 공정거래법이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까지 여성 단체를 중심으로 소비자 운동이 진행되어 왔기 때문에 마치 소비자는 여자들뿐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자보다 더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남성 소비자이지요. 이들의 소비자 의식을 높여 주어야 한다는 것도 앞으로의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최=사실 이 좌담회도 주부들만 모인 셈인데 앞으로는 당연히 남성 몇분이 함께 있어야 할 줄로 생각합니다.
김=어느 다방의 커피가 싸고 서비스가 좋으며 어느 음식점의 음식이 보다 값싸고 좋은가 등의 정보가 남성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교환되어야 하고 보다 양심적인 곳을 찾고 비싼 곳을 배척하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합니다.
조=『싼게 비지떡』이란 식의 종래의 인식도 바뀔 때가 된 것 같아요. 또 외국 제품이라면 무조건 좋다는 생각도 이젠 버려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김=그 같은 인식을 고치기 위해서는 「배운 사람」 「가진 사람」들의 각성이 앞서야 해요.
반포를 중심한 강남 일대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생활 수준이 중류 이상은 된다고 보는데 이곳의 소비자 의식에 실망한 적이 있어요. 물가 조사 결과 한양 슈퍼에 비해 뉴코아가 비쌌는데 그 결과 발표가 그곳 상인들을 자극한 것 같아요.
다시 물가 조사를 나갔을 때 상인들이 『저까짓 것들이 뭣하는 것들이야』라고 욕설을 퍼부으니 소비자인 손님도 이에 합세하여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우리 나라 소비자 의식 수준을 아직 이 정도로 봐도 좋을 것 같아요.
조=저는 신반포에 살고 있는데 그곳 어머니회의 단결은 대단해요. 1주일에 두세번 간사회를 열고 상품을 공동 구입하는 등 소비자 의식은 높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김=물론 어머니회나 반상회를 통해 단결하고 있는 곳도 많은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아 아직 소비자 의식은 걸음마 상태로 봐야 해요. 어머니회 말씀을 들으니 이들 어머니회와 소비자 단체가 힘을 합한다면 앞으로 보다 효과적인 소비자 운동을 펴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계몽 덕분인지 요즘은 사재기 현상 같은 것은 보기 힘들어요.
김=좋게 해석해서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경기 침체도 큰 원인으로 풀이 할 수 있어요. 경기가 회복된다면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현상이지요.

<매스컴 협조도 중요>
최=소비자 의식이 아직 걸음마라는 것은 저도 동감입니다. 우리가 지금 고발이다, 불매 운동이다 하는 것도 모두 대도시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기타 중소도시나 시골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이지요.
김=그래도 일단 시장 감시 기능은 소비자가 맡은 것이고 좋은 결과를 위해서는 계속 소비자를 교육시키고 계몽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정부에서는 소비자 교육에 아깝다 할 정도의 투자를 하는 것이 공정거래법을 성공으로 이끄는 길이라 할 수 있어요. 아무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소비자 단체의 육성을 위해 정부가 소비자 단체에 자체 실험실 등을 갖추어 주는 것도 시급한 일입니다.
조=매스컴을 통한 계몽도 보다 효과적이라 봐요. 매스컴의 협조도 무엇보다 중요하지요.
최=수출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외국인도 소비자라는 의식을 가지고 기업은 상품을 제조해야 될 것 같아요.
김=소비자 운동은 인권 운동이란 구호를 정한 적이 있어요. 소비자 운동이 잘되면 모든 것이 잘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앞으로 소비자는 극성스럽다는 소리를 들어도 좋으니 보다 많은 것을 시정하도록 건의하고 충고하고 기업과 상인이 양심을 되찾을 때까지 떠들어야 합니다. <정리=김 징자 기자>

<참석자>
김은경 (대한YWCA연합회 소비자 문제 간사)
최옥근 (주부 클럽 소비자 모니터)
조복자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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