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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경 구타 없앤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병영폭력 해법’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최정동 기자

지난 1일 경기경찰청 제2청의 의무경찰(의경) 선발에는 27명 모집에 748명이 몰렸다. 27.7대 1의 경쟁이 벌어졌다. 요즘 각 지방경찰청별로 매달 한 차례 뽑는 의경시험 경쟁률이 20대 1이 넘는 일은 예사다. 30대 1을 웃도는 경우도 종종 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의경 지원자가 부족해 경찰관들이 홍보에 나서기도 했다.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변화의 주요 요인 중 하나는 의경 부대에서는 구타나 가혹행위가 거의 사라졌다는 점이다.

이러한 의경 개혁의 핵심에 조현오(59·사진) 전 경찰청장이 있었다. 그는 2011년 1월 26일 전국의 전·의경 중 입대 6개월이 지나지 않은 4581명을 한자리에 모이도록 했다. 개인 짐을 모두 챙겨서 오도록 지시했다. 구타나 가혹행위에 대한 피해조사를 벌여 피해자 300여 명을 곧바로 다른 부대로 보냈다. 가해자와 관리 책임자에 대한 조사도 벌였다. 분대별로 선임 대원 중에서 한 명을 분대장으로 임명해 그가 아닌 다른 선임은 후임 대원에게 업무와 생활에 대한 지시나 명령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 같은 지침을 잘 이행한 경찰관은 특진시켰고, 어긴 이는 징계했다. 10명의 경찰 간부로 ‘전·의경 복무점검단’을 구성해 암행 감찰을 하도록 했다. 매달 수십여 건에 달했던 구타·가혹 행위 건수는 이른바 ‘조현오식 개혁’을 밀어붙인 지 6개월 만에 한 달 평균 1건 이하로 크게 줄었다.

조 전 청장을 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그의 개인 사무실에서 만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 비자금 계좌 발언’ 사건으로 재판에서 징역 8월형(사자 명예훼손죄)을 선고받은 그는 지난 5월 만기 출소했다. 오피스텔에 마련한 개인 공간에서 주로 책을 읽으며 지낸다고 했다. 재판에 대한 얘기는 뒷날로 미루고 의경 개혁에 대해서만 대화를 나눴다.

전국 신참 의경 한데 모아 피해 조사
-‘전·의경 생활문화 개선’ 작업을 왜 시작했나.
“경찰관 수에 치안 상태를 대비해보면 우리나라 경찰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능한 경찰 조직이다. 치안 수요를 따져보면 사실 기적에 가깝다. 그런데 국민이 경찰에 보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이유 중 하나가 전·의경 부대에서 폭행이나 가혹행위가 빈번히 일어난다는 점이었다. 본질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좀 더 직접적인 계기가 있었나.
“경찰청장 취임(2010년 8월) 뒤 전·의경 부대에서 자살사건 등 사고가 계속 일어났다. 그러다 2011년 1월에 강원경찰청 소속 307 전경대에서 선임 대원의 괴롭힘 때문에 대원 6명이 집단으로 탈영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위기가 기회’라고 마음먹었다. 우선 307 전경대를 해체하기로 결심했다. 내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겠다는 뜻이었다. 전경부대 하나 해체는 일반인이 짐작하는 것보다 지방경찰청에는 큰 충격이 간다. 시위나 시설경비 인력이 크게 줄어 여간 힘들어지는 게 아니다.” (군 훈련소에서 무작위로 차출되던 전투경찰(전경)은 국방부의 군 인력 개편 계획에 따라 2013년 9월에 사라졌다.)

-당시 과정을 보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일을 해나갔다. 평소에 구타 근절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나.
“대학(고려대 정외과 75학번) 다닐 때 월남전 참전 선배로부터 한국 군대와 미국 군대를 비교하는 얘기를 들었다. 한국군은 매일 ‘빠따’를 때리고 맞는데, 미군은 완전히 군기 빠진 군대처럼 보였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전투 현장에선 지휘관이 ‘돌격 앞으로’를 외치면 미군은 절반 정도가 앞으로 진격하는데, 한국군은 절반 이상이 미적거렸다고 했다. 선배는 한국군에는 ‘저(지휘관이나 선임병)는 안 가고 나더러 가라 한다’는 생각이 팽배한 반면 미군은 ‘국가가 나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는 믿음을 가진 것으로 보였다고 전했다. 전·의경을 지휘하는 경비부서에서 근무할 때마다 그 말을 떠올리곤 했다. 그래서 내가 관리하고 지휘하는 전·의경 부대에서만큼은 바꿔보려고 여러 시도를 했다. 그러다 경찰청장이 된 뒤 작심하고 개혁을 시도했다.”

-개혁에 가장 큰 어려움은 뭐였나.
“의식의 문제였다. 내가 일선 경찰관 생활을 하는 동안 한두 달에 한 번꼴로 ‘전·의경 관리 철저’라는 경찰청장 특별지시가 내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는 것은 별로 없었다. 이런 관행 때문에 ‘어차피 바꾸기 힘든 일’이라는 사고가 경찰 조직에 퍼져 있었다.”

민정수석실서도 “너무 나간다” 우려
-반발은 없었나.
“왜 없었겠나. 그런 식으로 운영하면 기강이 나빠져 시위나 경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제기됐다. 후배 간부들도 공공연히 그런 얘기를 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쪽에서 ‘너무 많이 나간다’는 우려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 당시 대통령(이명박 전 대통령)이 그런 내용의 보고를 받고도 묵묵히 지켜봐 준 것이 큰 도움이 됐다.”
당시 경찰청 간부에 따르면 회의에서 “우리나라 자살률이 인구 10만 명당 26명이고, 전·의경 자살률이 10만 명당 24명이다. 따지고 보면 전·의경 관리가 제도나 시스템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한 고위 간부도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집회나 시위 대응에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나.
“과거의 집회·시위 대응에서 전·의경들이 시민을 방패로 찍거나 농민을 발로 차 문제를 일으킨 적이 꽤 있었다. 구타나 가혹행위 때문에 불평·불만에 가득 찬 대원들이 이에대한 분풀이 성격으로 현장에서 난폭한 행동을 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작전 뒤 선임 대원들에게 ‘게으름 피운다’는 이유로 욕을 먹거나 맞지 않으려고 과잉행동을 하기도 했다. 구타·가혹 행위가 줄어든 뒤 이런 문제도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요즘 군이 구타 문제로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됐나. 군에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은가.
“적과 전투를 해야 하는 군과 시설 경비나 시위 대응을 하는 의경을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군기 확립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전쟁에서 승리하는 군, 전투에서 이기는 부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볼 필요는 있다. ‘돌격 앞으로’라는 지시에 따르지 않거나 오히려 총구를 평소에 자신을 괴롭히던 선임병이나 상관에게 겨누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무엇이 진정한 강군을 만드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의지만 있다면 방법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국방부 장관과 참모총장 등 군 수뇌부가 앞장서야 한다. 그들이 우선 개혁에 대한 신념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근본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의경을 지원하는 젊은이가 늘고 있다. 군 입대를 피하려고 선택하는 측면도 있다. 이를 어떻게 보나.
“좋은 인력의 효율적 배치 측면에서 국가가 종합적으로 검토해봐야 할 일이다. 국가 재정의 문제 때문에 미뤄지고 있지만 형편이 되는대로 의경제도는 폐지해야 한다. 직업 경찰관을 늘리는 게 옳다.”



조현오 1955년 부산 출생. 부산고·고려대(정치외교학과) 졸업 후 81년 외무고시에 합격했다. 외교관이 아닌 경찰에 투신해 서울 종암경찰서장, 경찰청 경비국장, 서울경찰청장, 경찰청장을 지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법학 석사.

이상언 기자 joon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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