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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복더위에 얼음이 꽁꽁… 청량산 「빙하계곡」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손이 시리도록 찬김이 솟는 돌 더미 사이에 수정 같은 얼음이 꽁꽁 얼어붙었다.
연일 푹푹 찌는 삼복무더위 속에 노천에 얼음이 언다는 믿어지지 않는 기현상이 경북 산간마을에서 나타나 주민들은 물론 인근 시·군에까지 화제가 되고 있다.
「빙하의 계곡」은 경북 봉화군 명호면 배곡리 청량산(해발8백76m)의 축융봉 아래 약수터 위 계곡.
돌더미 사이에 꽁꽁 언 얼음덩이가 곳곳에 묻혀있고 땅 속에서는 찬바람이 쉴새없이 솟고 있다.
한여름에 얼음이 언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인근 안동·영주·봉화 등지에서 하루 2백여 명의 피서객이 몰려 돌더미를 헤치고 열음을 캐느라 크게 붐비고 있다.
이 계곡에 얼음이 열어있는 것이 처음 발견된 것은 지난 20일.
계곡에서 2백m쯤 아래쪽에 사는 주민 최수복 씨(30)의 부인 박선희 씨(30)가 산삼을 찾아 나섰다가 흙더미 사이에서 찬김이 새어나오는 것을 보고 남편 최씨, 오빠 박낙봉 씨(48) 등에게 연락해 흙을 파헤쳐 길이30m, 두께cm쯤의 얼음덩이가 박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들은 얼음이 얼어있는 것이 신비스러워 더 깊이. 파헤쳐 본 결과 돌덩이 사이마다 얼음이 얼어있고 손끝이 시리도록 찬김이 솟아 나와 더 이상 파지 않고 흙으로 덮어둔 채 명호면 사무소에 신고했다.
얼음이 발견된 곳은 청량산 12봉 가운데 하나인 축융봉 계곡을 따라만든 진입도로(폭4m,길이2백m) 바로 옆 절개지.
해발 1백여m쯤 되는 곳으로 동남향이다.
흙과 돌더미가 뒤섞인 이곳은 5m쯤 앞에서도 하얀 김이 솟아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손을 김이 솟는 곳에 대고 있으면 손가락이 얼어붙을 것 같아 2분 이상 견딜 수가 없으며 손끝을 타고 찬 기운이 몸에 서려 등골이 서늘할 정도.
이같이 한여름에 돌더미 사이에 얼음이 어는 것은 단열 팽창현상.
서울대 기상학과 김성삼 교수는 지하에 있는 섭씨10∼12도쯤의 찬 공기가 바위틈을 통해 섭씨32도 이상의 지표면으로 분출할 때 압력이 갑자기 낮아지면서 온도가 순간적으로 0∼영하2도까지 내려가 지표면 근처에 응집해 있는 수분을 얼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김교수는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지하의 공기와 지상 공기의 온도차가 20도 이상 되어야하며 ▲공기 분출 통로가 작아야 되기 때문에 극히 희귀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청량산은 태백산맥 줄기의 하나로 동쪽으로 일월산(해발1천2백m, 서쪽으로 낙동강, 남쪽으로 안동군, 북쪽으로 문명산·풍악산과 접해 있다.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이 산에서 8년 동안 피신한 일이 있으며 6·25사변 때도 많은 공비들이 이곳에서 날뛰는 등 산세가 험한데다 자연동굴이 많았다.
얼음이 나온 곳에서 2백여m 아래쪽 평지에는 발견자 박씨 가족 7명, 오빠 박씨 가족 9명 등 4가구 23명이 담배·고추재배와 양봉 등을 생업으로 살고 있다. <청량산= 정일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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