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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미주의 한국인농장|15년만에 싹이 트는 농업 이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남북미주에 흩어진 교포사회에서 농사로 정착하는 드문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65년부터 시작된 우리나라의 해외농업이민은 15년이 지나서야 겨우 한두건씩 결실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성공했다고 하기에는 시기가 이르나, 땅을 파겠다는 당초의 뜻을 버리지 않고 그동안 피와 땀으로 고난을 극복한 몇몇 사람들과 장사로 돈을 번 일부가 뒤늦게나마 농사쪽으로 눈을 돌림으로써 농업이민의 앞날에 한가닥 밝은 전망을 보여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농사라도 짓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캐나다나 미국, 혹은 남미로 떠났다. 올해 안에도 정부가 주선한 아르헨티나와 칠레 농업이민이 각각 13가구가 떠난다.
그러나 막상 현지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이탈하고 만다. 농사꾼이 아닌 장사꾼이 농업이민으로 떠난 것이 원천적인 잘못인데다가, 기후와 토질조사가 전혀 안된 광활한 황무지에서 맨손으로 농사를 지을 수도 없다.
기계영농을 해본 경험도 없고, 자본도 없다. 당장 먹고살기 위해선 도시로 나가 보따리장사나 구멍가게를 하는 것이 빠르다. 타국에서 새 농민상까지 받았다는 어느 브라질 교포는 농사라면 신물이 난다고 했고, 고생을 견디다 못해 가정파탄까지 일어난 예도 있다.
최근 들어 브라질과 파라과이 정부는 한국인 여행자들에게조차도 비자발급을 기술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불법체류자가 많다는 것이고, 농업이민으로 입국한 한국인들이 농사는 짓지 않고 도시로 몰려들어 상업에 종사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민길이 열리려면 농업이민밖엔 없고, 따라서 몇몇 농장정착사례는 교포사회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으며, 그 뒤를 따를 움직임이 조금씩이나마 일고 있다.
캐나다의 터론토 근교에서 3가구, 미국의 뉴욕·워싱턴·로스앤젤레스·하와이 등지에서 10여가구가 무·배추 등 한국야채를 재배하여 코리아타운에 공급하고 있으며 뉴욕의 통일교 농장에서도 올해부터 야채를 내고있다.
농사를 목표로 2만 여명이 이민한 남미 여러 나라의 경우 아르헨티나의 리오네그로 지방에서 8가구가 2백여 정보의 사과단지로 정착했고 올10월중에 농사 이민 13가구가 산타페 지방에 이주할 예정이다. 또 붸노스아이레스 근교에서 전영환씨가 배추와 토마토농사를 하고 있다.
브라질의 퐁타그로소시 근교에 있는 산타마리아 농장에선 66년에 이민한 53가구 중 김병익씨 등 5가구가 l천3백㎞에 콩과 고추농사를 하고 있다. 또 지난 77년에 설립된 미라카투 농업축산협동조합(조합장 김승만)은 4천8백㎞의 야산에 농장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코피의 나라 브라질에서 한국인으로선 처음으로 김정한씨가 사웅파울루에서 서쪽 5백40㎞떨어진 론드리나 지방에서 대규모 코피농장을 시작했고 김용혁씨도 코피 묘목 5만 그루를 심었다. 전직기자 현창섭씨가 칠레의 산티아고 시에서 처음으로 야채와 양돈농장을 시작했다.
한국배추와 무우를 생산하는 야채농장은 교포밀집지역에서 상당히 성공적으로 경영되고 있다. 야채농사는 교포소비시장이 확보돼 있고 비교적 수익성이 높은데다가 자본회전이 빨라 다른 농사보다 유리하다는 잇점을 가지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의 야채농사는 오랫동안 일본인·중국인, 그리고 이탈리아계에서 독점돼왔다.
그들은 서양야채뿐만 아니라 동양야채까지 생산하여 동양 식료품점과 차이나타운의 음식점에 공급해왔다.
그러나 한국에서 먹던 배추나 무우와 똑같은 맛을 가진 야채가 교포농장에서 생산되면서부터 뉴욕·워싱턴·시카고·로스앤젤레스·터론토 등지의 한국인들은 모두 한국야채로 돌아섰고 일부 일본인 식료품점이나 차이나타운에도 들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서양인들도 한국야채를 먹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으나 한국농장이 서양야채생산 경쟁에선 아직 크게 불리한 형편이다. <사진 장홍근 기자 글 김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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