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빚 받으러 미국 가서 납치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뉴욕지사】서울에서 떼인 돈을 찾기 위해 미국에까지 추적해 현지 교포사회의 폭력배를 고용, 채무자를 권총으로 위협, 납치한 국제「해결사」범죄가 미국경찰에 의해 적발돼 일당 3명이 검거됐다. 뉴욕 110경찰서 수사진에 의해 검거된 한국인은 지난주 서울에서 건너간 건양인터내셔널 대표 권오춘씨(39·서울 미아동328의71)와 미국거주 남일(25·뉴욕엘머스트애비뉴 거주)·조한섭(20·뉴욕댄크리크스트리트51∼55)씨 등 3명으로 이들은 이미 뉴욕형사법원에 기소됐으며 다른 한국인 1명(신원 확인)이 수배를 받고 있다. 이들에게 납치됐던 한국인 강선우씨(34·뉴욕거주)는 국내에서 친지들로부터 5억6천여 만원을 사기해 미국으로 달아나 한국경찰의 지명수배를 받고 있었다.
이번 사건은 국내 재산을 소문 없이 정리하거나 친지들의 돈올 빼돌린 뒤 잽싸게 해외로 달아나 버리는 이른바「번개출국」이라는 도피성 해외이주가 새로운 유형의 범죄수법으로 지적된데 따른 후속범죄라는 점에서 관계자들은 당사국과 이에 대한 대책을 협의중이다.

<납치>
범인 일당은 20일 상오7시30분쯤(현지시간) 뉴욕시 퀸즈블로의 색슨하이트91스트리트 33∼45아파트 5A에 있는 집을 나서던 강선우씨(34)를 권총으로 위협, 차에 태워 납치했다. 일당은 4명으로 모두 한국인.
범인들은 강씨를 집에서 얼마 멀지 않은 퀸즈볼리바드에 있는 메트 모텔 방에 일단 가둔 후 강씨가 서울에서 권오춘씨에게 사기한 6만 달러를 몸값으로 요구했다.
강씨가『돈이 없다』고 하자 납치범들은 20일 하오 강씨를 맨해턴 애비뉴31가에 있는 사우드게이트 호텔로 옮겨 계속 돈을 요구했다. 10시간동안 시달린 강씨는 20일 하오5시30분쯤 뉴욕에 사는 사촌동생 강모씨에게 돈을 가져오도록 전화로 연락했다.
납치범들의 연락을 받은 강씨의 사촌 및 가족들은 즉시 경찰에 신고하고 뉴욕한국총영사관이 있는 파크애비뉴460 건물 앞에서 돈과 강씨의 신병을 맞바꾸기로 했다.

<범인검거>
20일 하오 뉴욕시의 번화가 파크애비뉴460 한국총영사관이 있는 22층 건물의 아래층에서 벌어진 납치범 체포장면은 극적이었다.
뉴욕l10경찰서 형사반장「토머스·메큐」씨가 지휘하는 사복경찰 10여명은 건물 주변에 잠복해 있다가 납치범 일당이 강씨와 함께 나타나자 권총을 빼들고 소리치며 포위했다.
체포된 한국인은 지난주 서울에서 뉴욕에 온 건양인터내셔널 대표 권오춘(54)·남일(25·뉴욕엘머스트애비뉴거주)·조한섭(20·뉴욕댄크리크스트리트51∼55)씨 등 3명이다.
경찰은 또 1명의 한국인 납치범의 신원을 확인, 수배중이라고 발표했다. 이들을 체포할 때 사복경찰관들이 일제히 권총을 뽑아 들고 덤벼드는 바람에 주위에 있던 시민들은 같은 건물1층에 있는 시티뱅크에 은행강도가 든 것으로 알고 기겁을 했다.
체포된 3명의 한국인들 손에 수갑이 채워지고 현장에 있던 한국인 몇 명이 공범이 아닌가해서 한때 경찰에 연행되었다.

<납치범들>
일당 중 권오춘씨는 지난해 서울에서 강선우씨에게 6만 달러 상당의 돈을 사기 당하고 돈을 받아내기 위해 지난주 목요일 강씨가 숨어사는 뉴욕으로 왔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납치사건의 행동대원으로 체포된 조한섭씨 등은 뉴욕의 한국인 유력 인사인 김모씨(42)의 부탁을 받고 권씨의 지시에 따라 행동했다고 자백했다.
김모씨는 권씨의 부탁을 받고 행동대원을 동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체포된 남일씨는『며칠 전 김씨로부터 강씨를 납치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그러나 나는 거절했다. 그 대신 내 후배 조한섭 등을 김씨에게 소개해 줬다. 나중에 나에게 연락이 와서 나갔다가 같이 잡혔다』고 진술했다.
체포된 납치범 일당은 퀸즈의 형사 법원에 이첩돼 21일 하오2시부터 적부심사에 들어갔는데 법원은 남씨에게 5천 달러, 조씨에게 1만 달러, 권씨에게는 5만 달러의 보석금을 부과하고 24일까지 돈을 납부하면 보석해 주기로 했다.

<건양 인터내셔널>
권오춘씨가 경영하는 건양인터내셔널주식회사(서울 북창동 삼오빌딩1003호)는 직원 3명의 고무제품판매알선업체(오퍼상).
또 수출용 수용 라텍스·지퍼 등을 취급해왔다.
권씨는 상업을 하다 76년 이 회사를 차려 말레이지아·일본·미국을 대상으로 연간 거래액 1백만 달러 정도의 실적을 올렸으며 서울 창동에 내수용 지퍼생산공장을 세워 함께 경영하고 있다.
직원들은 권씨가 상용 여권을 갖고 있으며 지난 16일 미국과 일본에 사업관계로 다녀온다며 출국했다고 말했다.
22일 본사에는 부인이 나와『평소 사업관계로 외국을 드나들어 현지 실정을 잘 알텐데 어떻게 행동했는지 모르겠다』며 초조해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