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인생살이에 여유의 숨결 불어넣는 것|항간의 의미를 살려 감칠맛 우러나야 제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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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나는 젊은 시절 걸핏하면 경주를 갈 찾는 버릇이 있었다. 내 이런 버릇을 가권들은「경주병」이라고 일렀었다. 거긴 누구를 만나러 갔는가? 숨쉬는 물, 숨쉬는 하늘, 숨쉬는 강산을 만나러 갔었다. 신라 사람들은 잠든 돌을 흔들어 모조리 깨어있는 부처로 앉혀 놓았기 때문이다. 하늘에도, 땅에도, 일목일초에까지도 모조리 푸른 숨결을 불어넣어 영원에로 돌이켜 놓았기 때문이다.
시란 무엇인가? 또 하나의 의미로 정의한다면 시란 여유이다. 빡빡한 인간살이에 여유의 숨결을 불어넣는데 그 뜻이 있다. 하기 때문에 생활이 현실이라면 시는 그 항간이다. 신라 사람들은 수유 속에서도 영원을 살았기 때문에 위대한 예술을 만들어 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하필 신라사람 뿐이겠는가. 고려나 이조의 도공도, 아니 역사에 발자국을 남긴 모든 선인들은 다 시간의 항간인 공간에 앉을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현대인들은 무엇인가에 쫓기고 있다. 좀 여유롭자고 하는 시에서까지 쫓기고 있다. 바쁜 중에서도 한가할 줄(득한)아는 사람들의 손길에서만이 문화는 이루어진다.
시조는 좁은 틀에서도 넓음(여유)을 구하는 넉넉한 시가 아닌가.
『세우』(유윤희), 『초우』라는 재목을『세우』라고 고쳤다. 초우라는 말은 없다.<그대의 빈 벌 위에 물빛으로 살아나네 외 깃발 푸른 들녘 가슴 안에 드는 하늘>다 가귀 이다.
『감자 꽃』(최광순)시조는 단수가 본령이다. 좀 더 노력하면 가능성이 있는 사람.
아직은 터치가 거칠다. <거친 꿈만 피는가> 좀 거칠다. 「지친 꿈」으로 고쳤다.
『백조 엘레지』(허성욱) 많이 진경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이 시인은 항간에 의미를 갈 줄을 모르고 있다. 소위 비약이니, 언외언이니 하는 것 말이다.
『반변천 이야기』(김영수) 아직은 많이 서투르다. 비록 테크닉 면에서는 서툴러도 골격 같은 것이 이루어져 있어 격려하는 의미로 뽑는다.
『어머니』(정성욱) <낮 바람 기운 저녁 노을 같은 사랑으로>이미지의 도출법이 예쁘다. 그러나 너무 말초적인 언어에만 탐닉하지 말도록. <정완영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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