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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해외 여행 에스코트 이성순씨|"전체 여행객들의 손발이 되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발전하는 시대에 따라 여성들의 사회참여 폭도 넓어지고 그 분야도 다양해지고 있다. 하루가 달리 새로운 직종이 등장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여성을 허용하지 않았던 분야에 용감하게 도전하는 여성, 새로운 분야를 말없이 개척해 가는 여성도 많다. 전문직·기능직·경영자, 때로는 취미의 세계를 프로 급으로 이끌어 가는 여성도 있다. 일 속에서 발전과 보람을 찾고 있는 이들, 내일을 위해 앞서가는 여성들을 찾아 인터뷰하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단체 여행객의 비행기 탑승 수속, 승무원과 여행객간의 중간 메신저, 입·출국 수속, 현지 도착과 함께 현지 여행사 관광 가이드와의 연결, 호텔 방 배정, 비행기 예약의 재확인 등 해외여행 에스코트가 해야할 일은 과히 격무에 속한다. 그러나 그 일속에 보람과 즐거움이 있다고 해외여행 에스코트 이성순씨(27·세방 해외 개발부 주임)는 자랑스러워한다.
해외여행 에스코트라면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낯익지 않은 직종이다. 그동안 해외여행은 폐쇄적이었고 또 여성 에스코트가 따라 갈만한 여성들의 단체 여행이 흔치 않았다. 그러나 지금 해외 여행의 문이 차차 열리고 있어서 앞으로 여성 직업에 또 하나의 가능성을 던져줄 수 있는 직종이 되지 않겠느냐고 이씨는 진단한다.
에스코트 경력 3년으로 여성 에스코트의 개척자에 속하는 이씨는 지난 한해 동안에만 4번이나 해외여행 에스코트로 일했다.
『지금 한미 친선 방문이나 대학생 해외연수 등으로 에스코트는 부족 현상을 빚고 있어요. 그래서 여행사마다 에스코트 양성을 서두르고 있고 우리 회사만 해도 에스코트 전담반을 구상하고 있을 정도예요.』
최소 10명의 인원에서 많이는 1백명에 이르는 여행객을 따라 이들의 출발에서 귀국까지 모든 여행에 필요한 수속과 절차를 밟아주는 에스코트는 우선 해외여행의 흐름을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여행의 경력 바로 그것이 능력이 될 수도 있다.
유럽·미국·동남아 등 모두 6번의 해외여행 에스코트 경력이 있는 이씨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여성 에스코트의 베테랑으로 꼽힌다.
76년 이대 사회학과를 나온 이씨는 곧 여행사에 입사, 78년에 에스코트 보조 겸 2주간의 카운터 교육을 받으러 서독에 갔다. 그때 함께 간 여행객은 소비자 회의에 참석하러 간 여성 단체임원 20명. 유럽 3개국을 16일 동안 들면서 우선 여행의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는데 힘썼다. 에스코트 보조로 따라간 것이지만 얼마나 긴장해있어야 하는 직종인가를 처음으로 실감하게 되었다고 이씨는 말한다.
이씨에게 그동안 가장 어려웠던 일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비행기 예약 취소를 당했던 사건이다.
한미 친선 우정의 사절단 40쌍, 80명의 여행객과 함께 로스앤젤레스에서 뉴멕시코의 엘버커키까지 토요일 저녁 6시30분 출발 비행기 예약이 되어 있었는데 그 전날인 금요일 저녁 5시30분쯤 예약이 취소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호텔 사정도 사정이려니와 6시30분 비행기를 타지 앓으면 엘버커키에서 귀국하는 전세 비행기 시간에도 맞추어 가지 못하게 되는 딱한 입장에 놓이고만 것이다. 여행객은 한두 명도 아니고 80명이었다. 정신없이 동분서주해 보았으나 뾰족한 대책이 없었고 결국 그날 아침 8시30분 비행기 하나를 겨우 예약할 수 있었다.
그래도 문제인 것이 저녁 비행기 시간을 기억하고 뿔뿔이 헤어진 일행을 아침 출발시간에 맞추어 소집해 들이는 일이 이만저만한 큰일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여행은 사고 하나 없이 끝냈지만 이씨는 그때의 일을 생각만 해도 등줄기에서 땀이 흐른다고 한다. 스케줄에 맞추어 차질 없이 여행해야하는 단체 관광객과 함께 갈 때 가장 신경을 써야하는 것이 바로 이같은 예약과 예약 재확인이다.
이밖에도 호텔 방 배정 때 일행을 모두 한 층으로 배정하는 것, 모닝콜의 부탁, 언어의 장벽이 있는 여행객을 자유시간에 돌보아 주는 일, 그 외에도 수많은 일로 에스코트는 대부분 밤1시 지나서까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대기해 있어야 한다. 이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함께 간 여행자들과 즐길 수 있는 관광 여행은 그 때마다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를 만들어주고 있다.
79년에 결혼한 이씨는 현재 갓 둘을 지난 딸이 있다. 그러나 여행 스케줄 때문에 지난 5월 딸의 돌날을 혼자 미국에서 보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마침 그 사실을 안 일행이 파티를 열어주어 이씨는 그나마도 에스코트의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이씨는 앞으로 보다 다채로운 관광 코스를 개발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날이 와주기만을 고대하고 있다.
현재 해외여행 에스코트로 일하고 있는 여성은 국내에서 3, 4명 정도. 기능직이기 때문에 여성으로서 받을 수 있는 직장에서의 차별 같은 것을 별로 느끼지 않는다고 이씨는 말한다. <김징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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