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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법 운용 왜 진통이 심한가-l시행 3개월도 안 돼 드러난 문제점들 &&메이커 우위의 습성 여전|「지도」했다지만 폴리에스터 값 사실상 담합|법 취지 살려 「사후관리」 마찰 줄여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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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공정거래법의 운영을 둘러싸고 적지 않은 마찰이 생기고 있다 그것을 보는 국민의 생각도 각양각색이지만 그것을 직접 다루는 정부안에서조차 손발이 맞지 않아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혼선과 부조화의 원인과 과정조차도 모두가 서로의 입장과 처리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실시된 지 석달도 안된 이 법의 운용이 이처럼 광범한 파장과 함께 폭넓게 경제활동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실증해낸 셈이다. 그리고 이런 파장은 어쩌면 불가피한 진통일 수 도 있다.
원래 이 법이 추구하는 정신이 독과점적 시장지배와 기존의 광범한 불공정거래를 바로 잡아 공정한 시장질서와 유통경쟁을 확보해 나가자는 것이다 .이런 일은 효율과 합리를 주 명제로 한 80년대의 과제와 맥을 같이 하지만 현실의 여건을 고려하면 그런 일을 추구하는데 너무도 장벽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시장의 대부분은 생산·출하· 판매에 이르기까지 거의가 독과점 지배형 아니면 공급자우선으로 짜여져 있고 유통조직에서의 거래관행도 대부분이 우월적 지위에 있는 메이커 위주로 움직여 왔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법에 관한 한 안고수비의 현실이며 그것을 보는 의식에서도 머리와 손발이 따로따로 타고 현행 공정거래법이 안고있는 문제의 핵심이 바로 이런 점이다.
폴리에스터 섬유사의 가격 카르텔행위를 둘러싸고 상공부와 기획원이 벌인 한차례의 공방전도 바로 그런 현실의 한 단면이다. 공정거래법의 기본정신이 독과점적 불공정거래의 규제에 있는 만큼 1차적인 관심이 대기업의 시장지배력과 동업자간의 단합카르텔 행위규제에 둘 수밖에 없다는 것이 공정거래실 측의 입장이다.
그린 차원에서 보면 폴리에스터 업계의 공공연한 가격인장 담합행위는 명백한 공정거래법 위반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가격 카르텔은 이미 상공부의「행정지도」를 거쳤다는데서 문제가 발단됐다.
지금까지 정부는 주요 공산품에 대해 생산출하는 물론 가격인상까지 사전 또는 사후로 개입하고 지도하며 조정 할 수 있었다.
국내 독과점 대기업의 대부분이 그동안 정부의 보호와 지원에 의존하여 비경쟁적으로 육성돼온 실정을 고려하면 이런 정도의 행정지도와 개입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온 것도 현실이다.
오히려 대기업들은 이런 행정지도를 보호와 지원의 표리관계로 여길 만큼 지도의존 성향까지 체질화되고 있다. 경제의 민간주도가 자주 주장되고 이때까지 생소했던 시장경쟁이 강조되면서도 행정지도가 계속 존속된 이면에는이런 오랜 관행과 함께 당장의 물가불안이라는 명분까지 있다.
독과점의 가격인상을 새 법에 따라 사후규제에 의존하게 되면 실효가 적을 것이라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그래서 공정거래법이 정착될 때까지는「감정적」으로 독과점가격의 행정지도는 계속 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입장이다. 이 법 실시 이후 줄을 이었던 공산품가격인상도 모두 정부의 행정지도를 거쳤다.
다만 자동차나 일부 주류 등 독과점품목은 행정지도를 거치면서도 교묘하게 담합인상이 아닌 것처럼 위장되었으나 이번 폴리에스터 가격인상은 이런 형식적 위장을 않은 채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같은 폭으로 값을 올려 명백한 카르텔 행위로 노출되었다.
공정거래법이 이런 분명한 카르탤을 문제삼게 되면서 상공부의 큰 반발을 사게 된 것이다.
물가안정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행정지도를 당연시했던 상공부로서는 정부가 인정한 가격카르텔이 문제된다면 앞으로는 일체 가격인상에 관한 행정지도에서 손떼겠다고 나왔다. 이렇게되자 정작 다급해진 것은 물가안정이었다. 물가안정 목표를 안고 있는 물가당국으로서는 주요공산품을 관리하는 상공부의「협조」가 절대적인 만큼 적극「중재」에 나서 겨우 수습된 것으로 보인다.
사후적으로라도 행정지도는 주무부처에 계속 맡긴다는 타협안이 나오게 된 것은 이런 사정이었다.
공정거래법의 운영을 둘러싼 이 같은 파란은 결국 관계 부처간의 소관업무에 대한 권위의식이 급기야는 물가행정전반에 걸친 파란으로까지 파급되었다는데 문제가 있다.
정작 이 새 법의 정신을 어떻게 구현하고 그 과도적 혼란을 어떻게 합심하여 극복할 것인지를 머리를 맞대고 협의해야할 정부안에서 먼저 소관과 권위에 얽매어 공정거래법의 본뜻조차 무색하게 지엽말단의 문제를 침소봉대하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책임 있는 관료의 태도가 아니라는 것이 관전자들의 시각이다.
정작 그보다 더 급한 일이 산적해 있다.
행정지도를 언제까지, 어느 정도로 끌고 갈 것인가, 근원적인 물가안정은 어떻게 달성하고 공정거래는 어떻게 정착시킬 것인지가 우선되어야할 협의사항이다.
이 법의 이상이 현실을 너무 앞지른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업계는 업계대로 경기가 나쁜 때이므로 시기가 부적합하다는 여론도 있다고 기존의 광범한 사회조직이 거의 예외없이 공급자 중심의 독과점조직인 처지에서 유통경쟁의 확보와 공정거래 질서의 확립은 거의 지란에 가깝다. 법이 현실을 앞선 것도 사실이나 공급자 우선의 모든 시장조직과 관의 행태, 법제와 행정이 수요자·소비자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하는 것도 주위의 명제다.
기왕 시작한 공정거래법인 만큼 현실과의 마찰을 줄여가면서 긴 안목으로 이 새로운 시장질서를 하나씩 정립해나가는 자세가 관료·기업 모두에게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김영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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