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호기 (1957~) '해질녘' 전문
따뜻하게 구워진 공기의 색깔들
멋지게 이륙하는 저녁의 시선
빌딩 창문에 불시착한
구름의 표정들
발갛게 부어오른 암술과
꽃잎처럼 벙그러지는 하늘
태양이 한 마리 곤충처럼 밝게 뒹구는
해질녘, 세상은 한 송이 꽃의 내부
사노라면 그냥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때가 있다. 시인은 어느 해질녘 그 장엄한 순간과 만난 것인데 그때 태양은 한 마리 곤충 따위로 요약된다. 거기에 더해 시인은 수련 한 송이 슬쩍 피워놓고 세상은 수련의 내부 아닌가라는 대담한 주장을 편다. 그 말을 가슴으로 받아 안으면 세상 사람들 모두가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수련들이다. 시가 일으키는 황홀한 기적!
강형철<시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