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9)「공짜안보」논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미일 동맹·핵 반입 문제 등을 둘러싸고 지금 미·일간엔 이른바「미니 스커트 논쟁」이 한창이다. 미일 학자들간의 토론에서 자주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이 낱말은 일목이 군비는 GNP의 0.9%라는 미니엄(최저)상태에 두고서「눈요기가 되는 몸매」로 세계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것을 비꼬는 말이다. 미니스커트란 이를테면「공짜 안보」를 비유한다.
사실 2차 대전 후 36년간 일본은 미국의 핵 우산아래서 미니스커트를 입고 돈만 벌어온 셈이다. 국방은 거의 전적으로 미국에 맡긴 채 열심히 트랜지스터를 팔아 경제대국이 된 것이다. 미국이란 돈 많은 노인의 첩살이 생활 30여년만에 어느덧 미국에 못지 않은 부자가 됐다. 이에 반해 미국은 그동안 많이 쇠잔했다.
아니 첩 일본의 미니스커트가 이젠 역겹기까지 하다. 미국은 일본이 첩살이를 청산하고 스커트 길이를 맥시까지는 안가더라도 미디엄(중간) 정도는 돼야 한다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힘이 이젠 전세계를 퍼트롤 할 수 없을 정도니 미국 다음가는 부국이 된 일본이 미국의 역할 일부를 맡아 줘야 마땅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한 일본의 태도는 아직 불투명하다. 항모 미드웨이호가 제집(모항)인 일본의 요꼬스까 기지에 귀항하는 것조차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 계속 미니스커트를 입고 미국의 첩살이로 돈만 벌겠다는 자세다. 국방은 미국에 맡기고 소형 자동차로 미국 시장을 석권하면서 주머니만 불리겠다는 배짱이다.
「스즈끼」일본 수상이 지난 5월 미국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일본은 새앙쥐가 되겠다』고 말해「오역소동」(생쥐가 아니라 고슴도치가 영어로 잘못 통역됐다고 일본측이 해명)이 벌어졌지만 어쩌면 이것이 일본의 진짜 속마음인지도 모른다.
일본이 군사 면에 관한 한 계속 미니스커트로 만족하려는 것은 물론 히로시마의 원폭 피해, 2차 대전을 일으킨 초군국주의에 대한 악몽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는데도 그 원인이 있다.
그래서 일본 재무장에 대한 국민의 거부 반응은 외국인으로서는 이해가 잘 가지 않을 때도 있다.
작년 6월의 총선거에서 가장 주목을 끈 것은 동경도 참의원 선거에 입후보한「구리스·히로오미」전 방위청 통합막료회의 의장(합참의장격)대「우쓰노미야·도꾸마」전 자민당 의원간의 선거전이었다. 「구리스」씨는 재임중 일본의 군비 증강을 공공연히 주장한 매파의 선봉장. 이에 비해「우쓰노미야」씨는 친북괴 좌파의원.
「구리스」씨가 격동하는 국제정세를 들어 일본도 이젠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주장하면「우쓰노미야」씨는 군비 증강에는 돈이 들고 그러면 국민은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고 맞섰다.
동경 도민들은「우쓰노미야」씨를 선택했다. 그것도 81만표 대 69만표의 12만표 차이로.
일본이 적국으로 가상하고 있는 나라는 소련이다. 그 소련군이 지금 혹까이도 바로 코앞에서 날로 군사력을 증강시키고 있다.
전국이 일본을 침공한다면-.
일본 아사히신문이 지난 3월 조사 발표한 국민여론 조사결과에 따르면「도망」치거나(21%)「항복」하겠다(16%)는 국민이 37%나 된다. 맞서 싸우겠다는 결의를 보인 것은 이보다 적은 34%. 나머지는 그때 가서 생각하겠다는 태도다. 전쟁을 모르는 전후 세대의 반전무도는 더 강하다. 20대의 약3할은 도망가고 2할은 항복한다는 마음가짐이다.
그들은 일본이 미국과 합세하지 않고 비무장 중립 국가가 된다면 소련도 일본을 무력으로는 공격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강화하고 핵무기마저 반입하면 이는 곧 소련을 자극시키고 소련은 이를 구실로 일본을 침략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철저한 패전주의 사상 속에서도 한편으론 보수화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일본 국민은 2차 대전 후 36년간 종전 직후의 8개월간을 제외하곤 언제나 보수여당 자민당을 지지했다.
작년 선거에선 압도적 다수로 자민당을 지지했다. 75년 이전까진 군비의「군」자도 터부시되었으나 이젠 재군비를 금지시킨 일본 헌법 개정론마저 공공연히 거론된다.
2차 대전의 1급 전범이었던「도오죠·히데끼」등이 복권되고 있고 수상·각료 등이 소국주의의 상징인 야스꾸니 신사를 참배하는 것은 어느덧 상식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재계는「협의회장단」으로 뭉쳐져 있다.「재계총리」라고 불리는「이나야마」경단련회장, 「나가노」상공회의소 회장,「히우가」관서 경제연합회 회장 등은 모두 신일본 제철 또는 스미또모 금속 출신이다. 이들 재계 중진들은 일본의 재군비를 공공연하게 강조하고 있고 때로는 징병제 부활까지 주장하기도 한다. 일본 국민들의「일본회귀」경향도 두드러지게 눈에 뛴다.
일본적인 것, 일본의 우수성 등을 강조할 때면 대부분 열광적인 박수를 보낸다. 작년 가을 노일전쟁의 영웅「노기」장군을 영화화한「2백3고지」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2백3고지」는 지금까지의 전쟁 영화와는 달리「죽음」과「비참」이 강조된 작품이다. 두 아들을 전사시킨「노기」장군, 전쟁터에 끌려가 총알받이가 되어 죽어 가는 무명의 병사들. 그러나 일본은 초대국 러시아를 꺾었다. 일본인들은 지금도 그「노기」장군을 군신으로 받들고 있다. 사무라이가 서서히 칼을 갈고 있는 셈이다.
핵무기 반입 반대, 미일 동맹 반대 소동이 지금 들끓고는 있지만 비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지듯 이 소동은 오히려 일본의 보수화, 우경화에 큰 거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더라도 일본의 재군비는 어디까지나「미디」스커트 선에서 고쳐야 한다. 만약 그것이 맥시 스커트로까지 발전되면 범을 숲 속에 풀어놓는 우를 범하는 결과가 될지도 모른다. 【김두겸 전 동경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