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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주 모의서 자수하기까지-취재 기자 방담|관할서 간부도 방송 듣고 "출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소매치기들의 탈출극은 96시간만에 5인의 도망자들이 모두 자수함으로써 막이 내려졌습니다. 온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고 엄청난 수사력을 동원케 했던 그들이 제2, 제3의 범행없이 자수로 끝나게 되어 퍽, 다행입니다.
-주범 이상훈이 사건 수사의 총 지휘탑이었던 대검에 자수함으로써 검찰의 체면은 그런대로 세웠습니다만 이의 자수를 받은 다음의 검찰 조치가 석연치 못했다는 평입니다.
-『이상훈이가 대검 중앙 수사부에 자수했으니 빨리 나와 달라』는 검찰의 연락을 받고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려가니 범인은 얼굴도 볼 수가 없었어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가 자수 했으니 남은 탈출자들도 곧 자수할 것이라는 겁니다. 그들은 서울 불광동 쪽에 있고 포위망을 압축하고 있다는 거예요.
-알고 보니 이가 자수한 뒤 1차 신문에서 『노은상·우홍식 부부도 자수할 뜻이 있다. 내가 자수했다는 방송이 나가면 그들도 곧 자수키로 했다』고 한 말을 믿고 부랴부랴 방송국·신문사에 연락을 한 거예요.
-보도진들이 노와 우, 그의 처들이 있다는 불광 극장으로 달려갔을 때는 이미 방송 스파트 뉴스를 들은 그 일대 시민들이 극장 주변에 몰려 있었어요.
-극장에서 3m 떨어진 파출소에서는 갑자기 동네 사람과 취재진이 몰려오자 웬일인가 하고 놀랐죠. 그러는 통에 검찰청에서 나온 수사관들이 『무장 출동하라』고 명령, 경찰관 4명이 카빈을 들고 극장 출입구를 차단했습니다. 수사관들은 플래시를 켜고 관람객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비추면서 온 극장을 뒤졌답니다.
-극장 안의 관람객이 30∼40명 정도라 다행이었죠.
-관할 서부 경찰서 수사 과장·형사 계장이 방송을 듣고 형사들을 데리고 현장에 도착한게 6시45분쫌 이었으니까요.
-서부 경찰서 기동타격대가 출동, 극장 주변을 완전 포위한 것은 하오 7시가 훨씬 넘어서였습니다.
-포위망을 완전히 펴기도 전에 보도를 요청한 것도 이해가 안가지만 사실 그 시간에 노일행은 포위망 안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금당 주인 부부 살해 사건의 경우 경찰은 주범 박수웅과 공범을 몽땅 잡아들이고 증거물을 회수하고 암매장한 시체들을 다 찾아낸 뒤 범인 검거를 발표하는 신중하고 완벽한 수사를 보여주었습니다. 이에 비교하면 5명의 도망자 중 단 한명의 자수자 말만 믿고 다른 4명은 서울 천지에 풀려 있는 채 이의 자수를 발표한 조치는 너무 서두른 감이 없지 않습니다.
-남은 범인들의 자수를 촉구하겠다는 취지는 인정해야겠죠.
-그러면 그때 검찰이 곧바로 관할 서부 경찰서에 연락, 기동 타격대를 출동토록 하는 등 1단계 조치를 취할 수 없을 만한 무슨 특별한 사유라도 있었나요.
-그게 바로 큰 사건을 놓고 빚어지는 수사 기관 사이의 공명심 다툼이겠지요.
-말이 났으니 말이지 이번 사건처럼 검찰·경찰의 관계가 미묘했던 적도 없는 것 같아요.
우선 『하루빨리 범인들을 잡아야 한다』는 명분은 일치하지만 『실컷 애쓰고 잡아다주니 놓쳐버리기나 하고 아쉬우면 찾고…』하는 식의 거부 반응이 경찰에 있었고 『뛰어주어야 할 발은 아쉬운데 수사 지휘 관청이란 입장에서 가볍게 경찰력을 내 놓으라 하기도 거북한 게』 검찰의 입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검찰은 자체의 책임을 통감한 나머지 매스컴에 1보가 터져 나간 뒤 이 사건 보도를 줄이려고 무진 애를 썼는데 수사 당국의 비협조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연일 속보를 대서 특필한 것이 오히려 도주범 일당을 궁지에 몰아넣고 이상훈의 마음을 돌리게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볼 수 있지요.
-사건 발생과 함께 그동안 저변에 깔려 묻혀 있던 교도 행정의 문제도 새롭게 부각됐어요. 공범들이 한 구치감에 같이 수감되어 여유 있게 도주 계획을 모의한 사실이라든지, 계호를 맡고 있는 교도관들의 허점 등은 시급히 보완되어야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검찰은 이같은 자체 안의 결함에 일련의 책임 의식을 갖고 남의 신세 안지고 이번 사건을 해결하려고 애썼읍니다.
그러니 없는 손발을 총동원, 뛰느라 고생도 많았습니다. 일단 수사 현장에 두 기관이 함께 뛰다보니 경쟁심도 생겼고 정보 교환 과정에서도 『내 것은 내 것, 네 것도 내 것』식이 되었겠지요.
-검찰의 사건 발표 과정에서도 개운치 않은 점이 적지 않았어요. 보도진들이 헐레벌떡 달려간게 하오 6시30분 전후였는데 2시간 후에 발표하겠다는 거예요. 그것이 하오 8시30분이 되자 『발표를 못하겠다』는 겁니다. 이유를 물으니 『엉클어지고 있다』는 거예요. 자수방송이 나가고 이때쯤이면 다른 범인들이 자수할 줄 알았는데 빗나갔기 때문이지요.
-보도진들은 이의 사진이라도 찍자고 했지요. 한 시간쯤 더 기다려 달라고 하더군요. 하오 10시쯤이 되어서야 사진은 찍되 서울 구치소 입감 때 찍으라는 거예요.
무슨 이유인지 자수한 이와 보도진들과의 대면을 꺼리는 인상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수사 본부장 이중근 대검 검사가 이날 하오 11시30분쯤 스파트 뉴스보다 약간 진전된 발표문을 내놓았습니다.
-형사 피고인들의 도주 사건은 왕왕 있는 일입니다만 이번 사건은 상황 전개가 중요했기 때문에 대검 중앙 수사부·지검 특수부가 개입했고 유례없이 대검 검사가 수사 본부장이 되었다고 봐야겠지요.
경찰도 경찰이지만 사건 발생 관할청인 서울 지검 남부 지청은 이번에 어렵고도 힘든 일을 치렸다고 봅니다. 원래가 사건이 많은 지청입니다.
검사 1인당 하루 처리 건수가 전국 검찰의 검사 1인당 하루 평균 처리 건수 (8건) 보다 2배가 많은 16건입니다.
사건 기간 동안 전 검사와 일반직들이 거의 매일 밤을 새워 이 사건에 달라붙었지요. 어느 검사는 이 사건이 해결되면 다음엔 미제 사건 처리로 또 밤을 새워야겠다고 한숨 짓더군요
-그것뿐만이 아녜요. 사건 발생 이튿날인 6일 밤엔 한꺼번에 열두 군데 은신 용의처를 덮쳤는데 나이 50이 넘은 모 과장까지 카빈으로 무장하고 지청 수사관들을 지휘했습니다.
-문인자·서두래 여인의 주변 인물을 집중 수사한게 8일 밤이었습니다. 이미 보도된 것처럼 이들의 전·현직이 술집 호스티스라서 그런지 그 주변 인물도 역시 그쪽 사람들이 많았어요.
이날 밤은 마침 윤석자씨가 지청 조사실에서 철야 조사를 받는 날이라 조사실 복도에 여자만 나타나면 사진 기자들이 무조건 플래시를 터뜨릴 때였습니다.
그런데 하오 11시30분쯤 소환된 이상훈 애인의 여자 친구 이 모양이 카메라 플래시를 받았습니다.
그 아가씨 대뜸 첫 마디가 『미친××들, 사진은 왜 찍고 지랄들이야』라고 기자들에게 푸짐한 욕을 던지더군요. 팁 안주고 나가는 취객 뒤통수에 대고 악쓰는 장면이 떠오르더군요. 졸지에 밤새우다 욕으로 배를 채운 셈이 됐지요.
-사건이 끝나자 유행어가 생겼답니다. 4명 중 유일하게 담치기에 실패한 이형기를 두고 코미디언 모씨의 별명을 붙여 『영등포 비실이』, 또 범인들이 감방 동료 김광일의 디스크치료용 요대를 빼앗아 칼을 만들었다고 『남의 허리 꺾어 나 살자』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이번 사건을 취재하면서 느낀 점이 있습니다. 이상훈을 비롯한 두명의 여인들의 성장 과정·가정 환경 등이 한결같이 어둡기만 했어요. 이상훈의 집은 안양천변의 아주 허술한 동네에 있는데 2평 남짓한 단칸방에서 부모와 4명의 동생 등 일곱 식구가 살아왔더군요. 다른 사람들의 거주지도 거의 비슷했습니다.
그 가족들의 반응은 죄의식 같은 건 없다는 거였어요. 범죄의 근절은 형사 정책보다 사회정책이 더 중요하다고 절감했습니다.

<참석자>
▲오홍근 차장
▲고정웅 차장
▲홍성호 기자
▲권일 기자
▲김창욱 기자
▲허남진 기자
▲이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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