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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먹는 여유 … 하교 땐 학원 늦을라 저녁 걸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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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경기 지역 초·중·고교의 오전 9시 등교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일 아침 수원 매탄중학교 학생들이 교실로 들어가고 있다. [뉴시스]

1일 오전 8시15분 경기도 고양시 덕양중학교. 조용한 교정에서 ‘텅텅’ 공 튀는 소리가 울렸다. 오전 8시30분까지던 등교 시간이 이날부터 오전 9시로 늦춰지면서 여유가 생긴 남학생 10여 명이 농구를 하는 것이었다. 오전 8시30분을 넘어서면서 조용하던 교문 앞에 등교 행렬이 이어졌다. 1학년 김지민양은 “잠도 충분히 자고, 식구들과 둘러앉아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나왔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6시30분 경기도 수원시 태장고. 학생 몇몇이 헐레벌떡 교문을 뛰어나갔다. 그중 한 남학생이 말했다. “학원에 7시까지 가야 하는데 하교 시간이 오후 5시40분에서 6시20분으로 늦춰졌다. 밥 먹을 시간이 없다. 다 끝나고 집에 가서 밤늦게나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경기 지역에서 초·중·고 오전 9시 등교가 본격 시행된 첫날 풍경이다. 이날 경기도 2250개 초·중·고 중 1932개교(85.9%)가 오전 9시 등교를 실시했다. 학생 대부분은 오전 9시에 맞춰 나왔고, 극소수 일찍 온 학생들은 운동을 하거나 교내 도서실에서 책을 읽었다.

 천천히 등굣길에 오른 학생들 사이에선 불만과 만족이 엇갈렸다. 학교에 걸어가는 학생들은 잠을 충분히 잘 수 있다는 점을 반겼다. 하지만 버스를 이용하는 학생들은 불편함을 호소했다. 오전 8시55분에 학교로 뛰어들어간 양수진(수원시 태장고2)양은 “어른들 출근 시간과 겹쳐 콩나물시루 버스가 정차조차 하지 않는 바람에 늦었다”며 “전처럼 일찍 나오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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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교가 늦춰져 상당수 학생은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식사를 제쳐놓고 학원으로 뛰어갔다. 실기 시험을 준비하는 예체능 계열 지망학생들은 마지막 수업을 빠지고 학원에 가기도 했다. 집안 사정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 역시 불만을 나타냈다. 오모(고2·경기도 고양시)군은 “하교가 늦어져 아르바이트 벌이가 줄게 됐다”며 “수업시간을 조정하기 전에 나 같은 처지의 학생들 의견을 듣지도 않은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대체로 반대였다. “아침에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는 시간이 줄어든 데다가 수업이 끝난 뒤 전혀 쉬지 못하고 학원에 가야 한다”는 이유였다. 전에는 오전 7시30분에 출근하면서 아들을 함께 등교시켰다는 중3 학부모 최미영(47·경기도 분당·여)씨는 “오늘은 자는 아들을 깨우기만 하고 왔는데 밥이나 챙겨 먹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오전 9시 등교를 실시한 고교 중 상당수는 고3 학생에게 예외를 적용해 오전 8시까지 등교하도록 했다. 두 달 남짓 앞으로 다가온 대입수학능력 시험이 오전 8시10분에 시작하는 만큼 생활 리듬을 여기에 맞춰야 한다는 이유였다. 부모가 맞벌이를 하는 등 집안 사정상 일찍 나와야 하는 학생들과 고3 학생들을 지도하기 위해 교사들 상당수는 종전처럼 일찍 출근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지난달 말 경기도 지역 교원 14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는 83%가 오전 9시 등교 전면 실시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이유는 ‘학교 현실을 반영하지 않았다’(37%), ‘학생·학부모·교원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다’(32%)는 것 등이었다.

 300여 개교는 “학부모와 학생 대상 조사 결과 반대가 많았다”는 등의 이유로 오전 9시 등교를 실시하지 않았다. 경기도교육청 한구룡 교육과정지원과장은 “하교 시간이 미뤄져 쉬거나 밥 먹을 사이 없이 학원에 가야 하는 부분은 학원들이 시간을 조정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오전 9시 등교란 수업을 그때 시작하라는 뜻이지 그 시간에 맞춰 학교에 가라는 의미가 아니다”며 “학생 스스로 등교 시간을 조절하면 만원버스와 출근길 러시아워를 피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익진·임명수·최모란·윤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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