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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영약 산삼을 집 마당서 키운다-삼척군 여삼리 산삼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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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영생의 보약, 기사회생의 신약, 불로 회춘의 비약으로 일컫는 약중지 대왕 산삼.
심마니들은 목욕재계하고 치성을 들여 현몽을 얻어야 한 뿌리가 눈에 들어온다는 비초 를 집 마당 삼포에서 거둔다.
강원도 삼척군 역곡면 여삼리는 l백20년의 전통을 가진 전국 최대의 산삼 재배마을.
삼척 읍에서 서북쪽으로 12㎞ 떨어진 해발4백50m의 고지. 서쪽에 삿갓 봉을 쓰고 북쪽에 가래골 산, 동쪽이 연치 산, 남쪽에 물푸레 산이 둘러찬 마을자리는 태백산 정기가 속속들이 스민 심산유곡에 산삼 키우는 마을과 걸맞게 떨어진다.
여삼 마을은 68가구에 주민 3백80명. 이 가운데 48가구가 얼룩대(삼포틀)에 솔가지를 덮은 2∼10평 남짓한 삼포를 갖고있다.
이 마을 전체의 삼포면적은 줄잡아 4백50평. 군 당국조차 정확한 삼포면적을 파악하지 못하는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산삼을 재배한다니까 떼돈을 버는 줄 알아요. 도대체가 산삼을 돈으로 셈한다는 게 부정타는 것입니다. 우리들한테는 산삼 키우는 게 대대손손 가보인데다 가업일 뿐이지요.』
이 마을 정연경씨(44)는 재배량과 소득을 묻자 산신령을 욕되게 하는 일이라고 입을 닫는다.
여삼 마을의 공식적인 가구 당 소득은 2백80만원. 하지만 산삼수입은 거래가 당사자간에 은밀히 이루어지기 때문에 당국의 소득집계에서 빠져 실제소득은 4백만원을 웃돌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마을이 산삼을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1백20년전. 정씨의 4대조부인 정성용씨가 심씨라는 사람에게 종자 5개를 얻어 심심풀이 삼아 심은 것이 효시가 됐다.
해방 전까지만 해도 재배한 산삼은 동네사람들끼리 보신제로 먹었고 다른 부락에서 얻으러 오면 3∼4뿌리에 초지한 벌과 맞바꾸었다. 지금도 한약 상이나 보양제를 찾는 외지인들이 찾아오면 거래를 할뿐 산삼을 들고 시장이나 외지에 나가는 일이 없다.
『집에 챙겨 놓는 한이 있어도 시장 엔 안 들고 나갑니다. 공연히 시장바닥에서 인삼 취급받으면 심기만 불편하거든요. 산삼이란 제값을 못 받으면 산신의 노여움을 받아 삼포가 안 되는 법입니다. 값 깎는 일도 허용이 안되지요.』
산삼을 파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이 예를 차린 후 가져가는 것이라 했다.
보통 10년이 지나야 상품가치가 있고 15∼20년이 지나야 약효가 있다는 산삼은 20년 근이 질에 따라 한 뿌리에 5만∼10만원. 30년 근이 23만원에 거래된다.
『산삼을 보신제로만 알지만 학질을 떨구는데도 그만이지요. 학질 걸린 애들한테 한 뿌리만 먹이면 하룻밤 새 뚝 소리가 나게 나아요. 찬바람 날 때 20년 근 8∼10개만 삼계를 하거나 꿀에 재워뒀다가 보신하면 추위를 모르고 겨울을 나는 것을 보면 산삼이 좋기는 한 모양이에요. 우리 마을에선 숫제 고뿔을 모르고 삽니다.』
2평 남짓한 삼포를 가꾸는 김진현씨(34)의 말이다.
그래서인지 환갑 넘은 할아버지가 땔감나무를 한 지게씩 산에서 해오는 것이 이 마을에선 예삿일이고 90세 이상이 3명, 60세 이상은 70여명이나 되는 장수마을이다.
어릴 때 병약해 시집올 때까지 꿀 잰 산삼을 주전부리처럼 먹었다는 올해 89세 된 김춘례 할머니는 지금도 소여물을 끊이고 손자들을 돌보는 일은 거뜬히 해내고 『앞으로 30년을 더 살 것 같다』고 입버릇 같은 자람이다.
이 마을의 남녀구성은 여자가 2명이 많지만 유아를 보면 4대6정도로 남자가 많다.
『남자들은 외지로 공부를 갔다가 돌아오지 않으니까 여자가 많지요. 산삼 먹고 힘 좋은데 딸을 낳을 리가 있습니까 』
아들만 5명인 정연우씨는 대를 못 이을까 봐 걱정하는 집은 한집도 없다고 너털 옷음을 터트린다.
산삼은 천종산삼·산양장뇌·사양장뇌 포삼장뇌의 4 종류로 이 마을에서 재배하는 것은 포삼장뇌. 보통 장뇌라고 부른다.
천종·산양·사양보다 약효는 덜하지만 그래도 인삼과는 효능을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이 김준석씨(38)의 설명.
산삼종자는 초복과 중복사이에 궁벙질흙(사토 질이 섞인 검은 흙)에 2㎝깊이로 밀집해 심으면 초봄 눈이 채 녹기 전에 삼 싹이 돋는다.
발아율은 50%면 성공적이고 20년 근을 캘 때쯤이면 발아한 것의 20∼30%를 수확할 정도로 삼 재배는 까다롭다. 종자채취는 5년 근이 2개, 20년 근에서 18∼20개를 얻을 수 있고 초복이 지나 붉게 익었을 때 재취한다.
산삼을 캐는 시기는 처서를 지나 추석 무렵. 그전에 수확하면 기운이 순에 뻗쳐있어 약효가 없다.『산삼은 몸통에 가락지모양의 삼 테가 있어 몇 년 근인지 금세 알 수 있지요. 30년이 넘으면 촉감이 피어나는 처녀들 피부처럼 탄력이 있고 맛은 씹으면 쓰면서도 달고, 달면서도 쓴 묘한 맛과 향기가 입안에 가득히 번지지요』
삼포주인 박재명씨(42)의 산삼 자랑이 끝이 없다.
『밤에는 줄을 삼포에 이리저리 얽어서 손목에 묶어두고 자지요. 그래도 훔쳐 가는 것을 막는다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한번 도둑맞으면 20년, 30년 정성이 도루아미타불이 되지요.』
삼포에 여자가 들어도 안되고 개를 먹거나 상가에 다녀온 사람, 외지에서 온 사람에게도 삼밭을 보여주지 않는다.
심마니들처럼 이들 산삼 키우는 주민들 또한 말을 아낀다고 한다. 인간사 흔한 시비가 입을 너무 많이 놀리는데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산신령의 노여움과 부정을 피하기 위해 심마니들이 입을 다물고 산삼을 찾듯 삼포마을의 주민들은 세상시비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입다물고 삼을 키우는 지도 모른다. <삼척=엄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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