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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된 한일외상회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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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내달부터 가을까지 잡혀있던 일련의 한일고위층회담에 우리는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6월초의 외상회담, 9월이전의 정기각료회의를 거쳐서 10월께에는 전두환대통령과「스즈끼」(鈴木善幸) 수상이 서울이나 동경에서 만나 74년8월이후 최초의 한일정상회담이 열리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어 왔다.
한일두나라 지도층의 이와같은 잇단 회담이 이번따라 각별한 중요성을 갖는 까닭은 첫째는 그것이 한·미·일 세나라 수뇌와 외상들의 연쇄회담 성격을 띠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소위 김대중사건에 대해 일본측은「원상회복」된 것으로 간주하고, 종래의 내정간섭적인 자세를 벗어나, 이제 두나라 관계가 정상적인 궤도에 오르고 있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28일 일본의 신임「소노다」(園田直)외상이 돌연 한일외상회담의 연기를 한국측에 통고해온데 대한 우리의 실망이 클 수밖에 없는 것도 우리가 한·미·일 세나라간, 그리고 한일 두나라간의 이런 광범위한 관계조정의 맥락에서 6월초의 외상회담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를 단순히 보자면 한일회담의 연기는 미일「동맹」파동과「핵반입」에 관한「라이샤워·쇼크」의 결과다. 이두가지 사태로「스즈끼」내각은 발족이래 최대의 위기에 처해있고, 「소노다」외상은 노신영외무장관과 회담하기로 되어있는 6월4일과 5일 이틀동안 의회에 출석하여 동맹파동과 「라이샤워」발언에 대한 야당측의 공격을 받아야할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9일에는 「스즈끼」수상과 함께 방구길에 오르고, 7월 중순에는 오타와의 서방부국들의 정상회담에 가야한다.
우리측 사정을 보면 노신영장관이 6월25일부터 7월9일까지 전대통령의 아세안순방을 수행하게 되어있다.
결국 외상회담은 빨라야 7윌말이후로 밀리고 9월로 잡혀있던 각료회의와 병행될 공산이크다. 그리고 정상회담의 연내성사여부는 일본국내사정의 흐름을 좀더 지켜본 뒤라야 어림이라도 할수 있겠다.
외교는 국내정치의 연장이요 반영이다. 외교행사는 진공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일외상회담을 연기하자는 일본의 입장을 이해하는데 인색할 필요는 없다.
다만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다면 회담연기를 사전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통고」해온 「무례」와, 「소노다」외상의 의회출석의 날자쪽을 조정하는 「성의」의 부재가 우리눈에 유난히 돋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스즈끼」정부가 지금 겪고있는 시련이 심각함을 우리는 안다. 따라서 뒤로 미루어지는 일련의 회담들은 상호협의를 통해서 일정을 잡되 한일정상회담의 연내실현이 달성되기만을 희망한다.
그동안 사정이야 어떻든 한일간의 순조로운 협력관계가 「집행유예」되어온 것은 사실이며 해결을 기다리는 중요한 문제들이 많이 쌓여있다.
일본신문들이 『그건 구조적인 것이다』고 억지를 부리는 한국의 대일무역적자, 엔화 차관증액, 농산물을 포함한 일본의 대한수입제한완화, 내년부터 시작될 5차경제개발계획에 대한 일본의 적극적인 협력, 일본과 북괴의 교역및 접촉, 재일동포들의 인권문제등이 주요 현안문제들이다.
안보쪽도 마찬가지다. 「레이건」행정부 등장이후 한·미·일 삼각협력이 빈번히 논의되었다. 아시아-태평양지역안보에 보다 큰 기여를 하라는 압력이 일본에 부쩍 가중되었다. 그런사정을 배경으로 우리는 일본지도자들과의 회담을 기다려 왔다.
그러나 이제는 미해군친선함대의 기항취소, 미일합동훈련중단, 미드웨이핵항모입항거부 움직임등은 지금까지의 분위기와 기대에 역행하는 인상이다. 안보문제에 관한한 냉전구조의 재현같은 삼각관계의 구축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일본언론의 주장이 「스즈끼」수상과「소노다」외상의 발목을 잡은 것같다.
그래서 어차피 한일간에 일련의 회담이 열리는 시기로 지금이 적기가 아닌 바에는, 우리는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보다는 시간 여유를 갖고 내실있는 회의를 갖자는 「소노다」외상의 말을 주시하면서 일본정국이 조속히 안정되고 수상실과 외무성의 대립으로 인한 「이원외교」가 해소되어「스즈끼」정부가 필요하고도 충분한 준비와 성의있는 자세를 가질수 있을 때를 기다리는 것이 현명한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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