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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연한 갈비"는 "말 갈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쇠고기로 둔갑한 말고기·말 갈비·말고기설렁탕을 서울시민들은 잘도 먹은 셈이다.
서울지검특수부가 26일 구속한 밀도살업자들이 잡은 말은 지난 4년간 4천69마리 1년에 평균 1천 마리가 넘게 서울에서 소비된 것이다.
이 숫자는 같은 기간 당국의 허가를 받고 도축된 말 2천4백38마리의 2배에 가까운 것이며 우리 나라 전국 말 보유 수 3천8백94마리 (80년도)를 상회하는 것이다.
검찰이 이번 사건에 착수하게 된 것은 육류식품가공업체에서 다량으로 말고기를 쓰고있다는 정보 때문이었다. 그러나 수사과정에서 그러한 사실은 3∼4년 전에 있었다는 막연한 소문으로만 그쳤고 전국 최대규모의 말밀도살 업자들이 걸려들었다.
이들이 잡은 말은 주로 제주도 조랑말과 마차를 끌다 퇴역한 늙은 말, 경주용 말 중에서 발목이 부러진 폐마 등이었다.
현행 축산물가공처리법에 따르면 말고기도 당당히 정육점에서 쇠고기·돼지고기처럼 팔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 사람들의 식성이 거의 말고기를 먹지 않고, 도축절차가 소 도살과 같이 까다로와 기피해왔으나 최근 몇 년 동안 고기수요가 달리고 얼핏보아 쇠고기와 구분이 어려운 점등을 노려 손을 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구속된 도축업자 오세호 씨(59)는 말을 잡아 피를 뽑기 위해 고기를 물에 담가 4시간 정도 두면 고기빛깔이 쇠고기와 비슷하고 고기가 연해 일반 소비자들에겐 수입쇠고기로 속이기가 쉽다고 했다.
갈비의 경우 기름 없이 살코기가 연한데다 많이 붙어있어 음식점에서 대량으로 가져간다는 것. 말고기소매업자 신국식 씨(49·구속)에 따르면 쇠고기 갈비의 뼈는 어른손가락 2∼3개 정도의 넓이지만 말 갈비는 뼈가 그 절반 정도로 가늘면서 둥근데다 살이 많고 뼈에 물기가 많다는 것이다.
말 갈비·말 갈비탕으로 톡톡히 재미를 본 박병국 씨(39·구속)의 경우 갈비 1근에 1천2백원씩 받아다 3곱이나 비싸게 팔면서도 손님들로부터는『그 집 갈비가 연하고 살이 많다』는 말까지 들었다. 이윤은 많아도 일반적으로 말고기가 재수가 없다는 게 정육점 주인들의 말. 그래서 쇠고기가 달리거나 꼭 단골로 찾는 음식점 외엔 거래를 꺼리고 있다는 게 유성정육점 주인 조연학 씨(40·구속)의 말. 이린 터부는 가축을 잡는 도부들에게도 마찬가지.
오씨와 말 한 마리에 7천원씩을 받고 지금까지 단골로 말을 잡아준 도부 권혁일 씨(40·구속)는 소의 경우 한 마리 잡는데 5만원씩을 받지만 말은 공식해체비가 1천5백원으로 엄청난 차이가 나는 데다 말을 잡으면 재수가 없다는 금기로 다른 도부들은 거의 손을 안 댄다고 했다.
「골목집」이라는 말 갈비탕 전문음식점(?)을 경영했던 박병국 씨는『돈을 모을만하면 꼭 재난이 오더라』며 그 동안 두 번이나 화재를 입었다는 것이다. 지난 2월 자기 음식점 앞집에서 불이나 옮겨 붙어 영업장소를 이전했으나 다음달 또다시 옆집에서 불이나 두 번씩 피해를 보았다고 했다.
수사를 지휘한 이태창 검사는 관계당국이 말 도축에 대해 무관심상태이고 말고기만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정육점에 대한 허가제도가 없는 게 유통과정상의 문제점이라고 지적하고 ▲말 도살을 일체 금지하거나 ▲도살은 허용하되 식용판매를 금지하고 동물원 등의 사료로 판매토록 하며 ▲말 도살 때 구입자명단과 수량을 허가관서에 통보하는 것을 의무화해야 할 것이라고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고정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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