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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륜 세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인륜에 어그러진 행위를 우리는 「패륜」이라고 부른다. 사람들 사이에서 사회적 관계에 따라 지켜야할 도리를 저버리는 행위를 뜻한다.
「인륜」이라고 해서 꼭 가족관계만이 문제될 수도 없고 또 유독 전비속관계만을 꼬집어 내세울 수도 없지만 우리 사회의 통념은 흔히 그런 한정을 즐긴다.
그러니까「패륜」이라 하게되면 우선 가족관계가 선정되고 그 중에도 부모와 자식관계가 훼손되는 경우를 상정하게 된다.
인륜중에서도 「천륜」을 해치는 악덕을 지침하는 것이 패륜인 만큼 전통적 동양윤리의 기반위에서 평가하면 이것은 도덕적 파탄으로 도저히 용서될 수 없는 죄악이다.
그런 패륜범이 근래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시대의 변봉과 가치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치안본부가 최근 발표한 것을 보면 올 들어 5백12건 4백91명의 패륜사범이 검거되고 있으며 그 가운데 살인이 26명, 폭행·학대·유기가 2백 여명에 이르고 있다.
패륜사범이 반드시 요즘에만 생기는 것도 아니고 또 동서양을 통해 우리만의 일도 아니지만 최근 들어 사배의 양상을 보인다는 현상에선 우리사회 윤리의 전반적인 위기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새삼 주의를 환기하게 된다.
최근의 패륜 중 엔 용돈을 주지 않는다고 아버지를 살해하고, 병든 노모를 귀찮은 존재라고 극약으로 숨지게 하며, 부부싸움을 말린다고 강모를·흉기로 찌르는 등 그 사례를 옮기기조차 끔찍하다.
실상 나타나지 않은 패륜의 양상은 더 심각할지도 모른다. 폭행과 유기 등 초속학대의 실태는 그 상황과 수법에 따라 천차만별이라서 간단히 설명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 패륜사레가 이처럼 외형적이고 물리적으로 나타나기보다 마음의 병을 가져다주는 정신적 박해를 포함하게되면 더욱 복잡한 것이다.
게다가 노인들은 자식들의 박해가 수치스럽기도 하고 일면 보복도 두려워 아예 그들의 고민이나 울분을 털어놓지도 않는 것이 보통이다.
단지 범죄로서 나타난 패륜사례가 이 같은 숫자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전체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외국에도 노인학대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미하원 노인문제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미국인 25명중 1명 꼴인 약1백 만 명의 노인이 자식의 학대를 받고 있으며 노인학대의 사례는 5건 중 1건만이 보고될 뿐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로써 보더라도 노인학대는 노인복지라는 문제와 함께 사회적 문제이며 이 시대의 심각한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어디 이 시대 이두회의 문제뿐일까. 패륜이 인륜관계, 인문적 도리의 파괴라는 절명은 부모·자식관계나 가족단위에서 그치지 앉고 이를 좀더 확대하면 그대로 사회와 국가질서의 파괴로 이어짐을 알 수 있다.
비단 동양에서 뿐 아니라 서양사상가「헤겔」에 있어서도 인륜 곧 객관화된 이성적 의지는 가족·시민사회·국가라는 실체와 이어져 있는 것이다.
이같이 패륜의 한 사례는 한가족의 질서파괴에 그치지 않고 사회질서와 국가의 안령에 위해를 가하는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사회나 우리 국가의 도덕적 기반을 확립하며 윤천의식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가족단위에서의 패륜의 근절이라는 과제를 우리 사회가 공동의 목표로 세움직한 것이다.
패륜의 근절은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또 일조일석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땅히 이루어져야한다.
국민학교의 교육에서부터, 가정의 교육에서부터, 사회교육의 제수단을 통해서 효도의 권장과 도덕재건의 운동이 이제부터 끈질기게 전개되어야 할 시점에 이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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