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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할머니의 목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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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정영목
번역가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꽤 더울 때 오래전부터 알던 작가를 찾아 창원에 갔다. 막 사십 대에 접어든 뜨거운 시절에 처음 만났지만 지금은 일흔에 다가선 노(老)작가였다. 오랜만에 긴 시간을 함께 보내며 수십 년간의 이야기를 되새기는 동안 얼마 전부터 이 작가에게서 느껴지던 편안함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변하지 않을 것은 변하지 않았으면서도 나이가 들면서 변할 것은 변했다는 데서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편안함이었다. 변하지 않을 것은 변하고 변할 것은 변하지 않는 부자연스러운 선례들에 신물이 나던 터라 이 순순한 노화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오래전 가장 뜨거운 현장을 찾아 창원으로 내려갔던 이 치열한 작가에게 나타난 변화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너그러움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듯한데, 이는 내가 늙음에서 기대하는 중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필립 로스의 어느 단편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군대에서 하사관으로 부하들을 상대하다 갈등에 빠진 주인공 네이선은 문득 환청처럼 “왜 애는 들들 볶고 그래?” 하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는다. 어린 시절 네이선이 잘못을 하여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때 어머니가 아들을 가르치려고 마구 소리를 질러대면 할머니가 늘 하던 말이었다. 할머니는 그런 때 필요한 것은 설교가 아니라 꼭 끌어안아주는 따뜻함이라고 생각했으며, 네이선은 이런 할머니에게서 자비가 정의에 우선한다는 것을 배운다.

 이 땅에서 베이비붐 세대로 태어난 나 자신의 어린 시절도 네이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젊은 어머니는 격변하던 한국 사회에서 자리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배운 세상의 이치를 어린 맏아들에게 전수하려고 노력했다. 이것저것 깊게 고려할 여유가 없었던 그 시절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그 방법이 늘 그렇게 부드러웠던 것만은 아니어서, 나처럼 재질이 약한 경우에는 좋은 그릇으로 커가기는커녕 자칫하면 깨져 버리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절대적 피난처인 할머니가 있었고, 할머니는 어머니가 내세우는 세상의 이치를 인간의 이치로 압도했다. 어쩌면 어머니와 할머니 사이에 암묵적 역할 분담이 이루어져 있어서 어머니가 할머니를 믿고 더 가혹하게 세상을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할머니는 내가 어떤 처지에 있어도 누군가에게는 귀한 사람일 수 있음을 분명히 알려 주었다.

 집 밖의 세상에서도 할머니의 이런 목소리는 당연히 필요하다. 그래야 힘겨운 사람들도 비빌 언덕이 생길 테니까. 세상이 아무리 혹독하게 자신의 논리를 강요하더라도 인간이 사는 이치를 대변하는 존재가 버텨 주어야 하는 것이고, 이는 비단 어떤 종교의 온화한 지도자만이 아니라 네이선의 할머니나 나의 할머니처럼 평범하게 늙어가는 사람들의 역할이기도 하다. 그러나 노인 인구는 점점 늘어 간다는데, 네이선과 내가 들었던 할머니의 목소리는 갈수록 듣기 힘들어지는 듯하다. 외려 인간의 이치와는 동떨어진 강퍅한 말이나 행동이 터져 나오는 일이 빈번하니, 머잖아 그 대열에 합류할 연령층에 속한 사람으로서 마음이 무거워지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하긴 노년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이 100세 시대의 공포에 짓눌려 있는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노인의 역할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을 듯하다. 이렇다 할 안전판이나 생계 수단 없이 성년 이후 살아온 시간보다 긴 시간을 감당해야 할 때, 많은 사람에게 노후란 오로지 생존의 문제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나이는 들지만 도무지 늙을 수가 없는 꼴이다. 게다가 생존을 놓고 젊은이들과 경쟁마저 불사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들 앞에서 인간의 이치니 뭐니 이야기하기가 영 면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의 할머니들이라면 바로 이런 상황에서 목소리를 더 높였을 것 같기도 하다. 사실 할머니들인들 그렇게 호락호락한 삶을 살았을까. 외려 훨씬 힘겨운 과정을 겪었지만, 바로 그 고난 속에서 인간의 이치를 터득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잇값을 하는 것이 결코 나이가 들면서 그냥 따라오는 부산물이 아니라 힘겹게 얻어낸 성취임을 깨닫게 되고, 그래서 인간답게 늙어가는 분들이 더욱 존경스러워 보인 여름이었다.

정영목 번역가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