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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동양의학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다 '반인간'

중앙일보

입력

다이어트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사회 병적 현상에 경종을 울리는 '반인간'이라는 장편 소설이 책세상에서 출간되었다. 10년 만에 신작을 발표한 작가 김태연은 간결한 문체와 재치있는 입담으로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주제에 일상적인 소재를 가미하여 소설 읽기의 재미를 더해준다.

국민을 볼모로 한 의료계의 쟁의 행위에 자극을 받아 그들의 집단 이기주의를 고발하기 위해 씌어진 이 책은 동양의학의 허와 실을 낱낱이 밝혀냄으로써 인간의 소중한 생명을 다루는 의학에서조차 경제 논리가 우선하는 반인륜적 세태를 비판하고 있다. 소설의 제목인 '반인간'이 내포하는 의미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하나는 다이어트에 집착하는 인물들을 지칭하는 의미에서의 반(半)인간, 또 다른 하나는 반인륜적 행위도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사회악과도 같은 존재로서의 반(反)인간을 의미한다.

사회적으로 촉망받는 직업인의 이기주의가 만들어낸 인간 파괴와 사회적 허상 뒤에 감춰진 그들의 조악한 실상을 고발하는 '반인간'을 통해 참된 의료인의 자세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현대인의 욕망과 집착, 다이어트

다이어트에 미친 세상. 작가 김태연은 서슴없이 이렇게 말한다. 행간 행간에는 이러한 세태를 꼬집는 엽기적 행각이 나열되고 있다. 다이어트는 이제 미(美)에 대한 단순한 인간 욕망의 발현이라는 개념을 넘어섰다. 그것은 인간성 말살, 도덕성 상실이라는 가공할 만한 파괴력을 지닌 전쟁과도 같다. 바야흐로 21세기 인류에게 새로운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것을 욕망하는 이들이나 그 욕망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이들 모두 살과의 피나는 전투 속에서 인륜 모독의 범죄를 저지른다.

다이어트는 인간의 잠재적 본능에 내재해 있는 처절한 파괴욕 그 자체인 것이다. 이처럼 '반인간'은 다이어트 공화국에 살고 있는 우리의 파괴 본능을 비추는 거울과 같은 작품이다. 그러나 그 거울에 담긴 모습은 비단 다이어트만이 아니다. 도처에 반인간이 넘쳐난다. '반인간'에는 자신의 의학적 성과를 위해 살인마저 서슴지 않는 의료인, 기상천외한 성 관념으로 무장한 성 도착자들, 돈으로 세상을 농락하는 권력자들 , 그들이 펼치는 비극적 파노라마가 담겨 있다.

의학과 첩보의 만남, '반인간'

환상적인 침술로 한의학계의 대부로 자리매김한 한의사 김준태는 상류층의 비만인들을 상대로 하는 명품 다이어트센터를 운영하면서 막대한 재산을 벌어들인다. 그는 살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들에게 운동과 식이요법이 필요 없는 침과 환약만을 이용한 시술을 통해 완벽하게 다이어트에 성공시킴으로써 신과 같은 존재로 등극한다. 그런 김준태를 내사하기 위해 정보부의 최보자라는 요원이 급파된다. 최보자는 김준태와 그의 다이어트센터를 내사하는 과정에서 현재 한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동양의학의 파행적 의료 행태를 목도하게 되고 다이어트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세태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김준태에게 다이어트센터 회원들은 화려한 침술의 시연 도구 혹은 실험 대상인 마루타에 불과할 뿐이다. 다이어트를 통한 인류 구원이라는 거국적 목적 아래 엽기적 살인이 거침없이 자행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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