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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도사린 위험…이비극 막을수 없었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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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또 대열차사고가 일어났다.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널려진 시신들에게서, 아코디온처럼 쭈그러든 객차의 모습에서, 중태에 빠진 엄마를 부등켜안고 울고 있는 3살꼬마의 원망스런 표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껴야 하는가.
철도당국은 「사후약방문」만 되뇔 것인가. 기회있을 때마다 승객의 안전수송을 내세우던 호기는 무엇으로 변명할지 궁금하다.
철도는 1898년 제물포∼간 33km가 개통됨으로써 이땅에 첫발을 디뎠다.
그후 83년이 지난 오늘날 총연장 5천9백47.8km, 디젤기관차 4백6대, 전동차 2백50대, 객화차 1만8천8백30량, 하루열차운행 1천7백80회에 이용승객 1백14만명, 화물 14만t으로 성장했다.

<항상 사후약방문>
그러나 늘어난 승객·화물량에비해, 시설확장이 크게 뒤떨어져 철도사고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해방당시와 비교에보먼 선로는 겨우 61%가 늘었으나 여객은 8백40%, 화물은 1천7백%가 늘었으니 「사고가 안나면 비정상」일 정도다.
객차가 5m아래 진흙 구덩이로 곤두박질 했는가 하면 바퀴를 하늘로 향해 쳐들고 둑아래에 드러누웠다.
아코디온 모양의 희극적 객차를 보며 아무도 웃을수 없다.
엄마를 안고 우는 꼬마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너무 처절하다고, 울먹이며 전화하는 독자도 있었다.
누구를 위해 있는 철도이기에 무엇 때문에 국민들이 귀중한 생명을 잃고 괴로움을 당해야 하는가.
우리나라 철도는 경부선·호남선 주요본선은 대륙지배를 꿈꾸던 일본인들이 군사·시민정책에 따라 건설한 것들이다.
엉뚱한 목적으로 부설된 철도체제가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철도행정이. 얼마나 뒤떨어저 있는가를 단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볼수 있다.
이때문에 철도 내부행정을 잘 알면 기차타기가 무서울만큼 사고 위험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선로 턱없이 부족>
우선 객차의 l2%인 2천1백 61량이 내구연한(25년)이 넘었고 디젤기관차의 14%도 연한(20년)을 넘긴 고물이다. 2천4백17개소에 총연장 1km의 철교도, 하상이 놀거나 모래가 팬곳이 부자기수, 침묵의 노후(7.5%), 철길의 자갈부족(12%), 균열로 물흐르는 터널등 열거하기조차 힘들다.
특히 이번사고의 원인이 된 건널목 실정은 더욱 한심하다.
전국5천9백90개의 건널목등 간수·차단기·경보기등을 갖춰 제대로 된 것은 8%뿐이고 건널목에 표지판만 덜렁 서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1대에 1백50만원씩하는 경보기 설치를 예산이 없어 못한 것이다.
사고가 나자「라이프니즈」식이니 하는 어려운 용어를 쓰며 최대한 보상을 약속하는 일이 밉다.
보상은 최선의 방법이 못된다.
보상에 쓰일 예산을 국민의 생명을 빼앗기에 앞서 예방하는데 쓸수는 없었을까.

<경영방식도 엉성>
국민의 생명과 재산의 수송을 맡고있는 철도당국이 예산부족으로 이를 소홀히 관리한것이 밝혀진다면 국민은 우울해질수밖에없다.
철도당국의 적자운영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또 단시일내에 .해결 될 전망도 없다.
l년에 경상적자가 90역원으로 경부· 경인· 중앙선등 3개노선을제외한 모든 노선이 적자다.
심지어 5백29개의 .여객취급역중 27%와 3백89개의 화물 취급역중 25%는 인건비의 3분의l도 못건진다.
지난해말 현재 철도청의 부채는 차관·차입금등. 모두 3천2백억원.
이에따른 원리금 상환액만도 연2백50억원으로 철도적자는 불치의 병에 가깝다.
물론 공익성 때문에 이에대한 과감한 수술 (휴선·폐선·단축운행)을 못하는 까닭도 있지만 뒤떨어지고 엉성한 경영방식 탓도 배제할수 없다.

<고급인력 모자라>
현재 철도청 산하 공무원은 모두 3만8천명. 고졸이 33.8%로 가장많고 무학·국졸이 26.2%로 다음을 차지해 고급인력은 극소수다. 항공기·고속버스등 고급교통수단과 경쟁하기에는 철도는 문제점이 너무 많다.
양파껍질처럼 벗기고 벗겨도 한이없다.
이제 철도당국은 혁신할 시기가 왔다. 과감한 수혈(투자)과 경영합리화로 탈바꿈해야할 때다.
한꺼번에 수십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살인흉기 철마는 자취를 감추어야한다.
시야가 가려 안보이는 건널목은 시야를 튀우고 굽어서 위험한 철길은 곧게 펴야하며 기차가 함부로 후진하는 기관사의 상식이하의 행동도 없어져야 한다.
편안하고 안전한 철도, 특히 안심하고 믿고 탈수 있는 철도를 국민들은 바라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철도당국의 반성과 혁신이 시급하다는 것이 이번 참사가 남긴 교훈이다.<권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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