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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구례군 산동면 위안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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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구름이 손에 잡힐 듯한 하늘아래 첫 동네 전남 구례군 산동면 위안리 상위 마을.
해발 6백50m. 서울의 관악산 최고봉인 충주대가 해발 6백29m이고 보면 관악산 꼭대기보다 더 높은 곳에 마을이 있다.
법정리로서 남한 최고지대 마을인 상위 마을은 지리산 연봉가운데 남서쪽의 제1만복대(해발 l천4백37m)와 제2만복대(l천2백65m)를 잇는 산줄기의 허리춤에 매달려있다.
25가구 1백74명의 주민들 스스로가 고산족으로 즐겨 부르는 이 마을은 능성 구씨와 남양 홍씨가 11가구씩 주성받이.
5백여 년 전 구씨 총각과 홍씨 처녀가 임란을 피해 이곳에 들어왔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남한에서는 이 마을이 가장 높은 마을 가운데 하나지만 세계적으로는 인도북부의 「바시시」 마을이 꼽히고 있다.
「바시시」는 「티베트」와의 국경지대, 「히말라야」 산맥에 자리잡은 마을로 해발 5천9백88m나 된다.「바시시」마을의 특징은 산소부족.
그래서 원주민들은 산소소비량을 줄이기 위해 가까운 거리를 갈 때도 걷는 대신 노새를 타고 다닌다.
원주민들은 양을 기르며 별 탈없이 살지만 여행자들은 산소부족으로 항상 산소호흡기를 휴대해야할 정도.
또 이 마을에 가기 전에는 적응 테스트와 신체검사를 받아야한다.
이 같은 「바시시」 마을에 비한다면 상위 마을은 평지나 다름없지만 이 마을은 겨울이 길다는 것이 특징-.
30여리 떨어진 구례읍에 비해 한달 빨리 겨울이 오고 한달 늦게 봄이 온다.
따라서 봄·여름·가을 등 활동기에는 평지 주민들에 비해 두 배 이상 부지런해야만 살아나갈 수 있다.
『요즘 같으면 아침 5시30분이면 온 마을 주민이 잠자리에서 일어나지요』 이장 구경근씨(44)는 늦잠 자는 주민은 한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남자어른들은 쇠죽을 끓이고 주부들은 4∼6km 떨어진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아침식사준비를 서둘러야한다.
또 낮에는 논·밭에 나갔다가 밤이 돼야 돌아오기 때문에 세탁·땔감 준비 등은 아침부터 서둘러야한다. 『고지대라는 악조건을 이겨내려면 부지런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이 마을 주민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몸에 저절로 배는 습관입니다.』
이장 구씨는 새벽부터 온 마을이 활기에 찬다고 설명했다.
이 마을의 소득 원은 농경지 19정보(논15정보, 밭4정보), 산수유 3천 그루, 표고버섯 재배단지 l백20평, 밤나무 2백 그루, 한우50마리, 누에치기 등이다.
마을 자체 농경지에서 나오는 쌀·보리·감자·채소 등이 주민 소요량의 70%정도에 그치기 때문에 부업을 많이 벌이게 됐다.
이 마을 가구 당 연간소득은 3백45만원. 구례군 관내 마을 가운데 가장 높은 셈이다.
때문에 TV가 없는 집이 없고 고교생7명, 중학생15명, 국교생 24명 등 취학률 l백%.
모두 부지런하여 빈부격차가 적어(최고 소득자와 최저소득자의 차이가 연80만원) 주민들간에 이질감이 없다.
집 구조는 여느 농촌과 다를 바 없지만 냉장고가 전혀 없는 것이 이 마을의 특색이다.
여름에도 모기가 없을 정도로 선선하고 마을 복판으로 흐르는 계곡 물은 발이 시릴 정도.
항아리를 계곡에 걸쳐두면 김치를 시지 않게 보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모든 길이 경사진 길이어서 논·밭에 나 다니는 것 자체가 「등산」이나 마찬가지. 산 타기가 몸에 배 이 마을 주민들은 평지에선 l시간 동안에 7∼8km를 걸을 수 있다.
『아직 이 마을에서는 감기나 위장병을 앓았다는 사람을 본 일이 없어요』
주민 홍성옥씨(45)는 검게 그을은 얼굴에 알밴 다리를 보여준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외부와의 혼인이 거의 없어 모든 주민들이 인척으로 묶여 있다.
따라서 내 집·네 집 가리지 않고 모든 일을 오순도순 처리해나가고 있다. 개들도 남의 집 사람을 보고 짖지 않을 정도다.
음력 정월 설 잔치는 마을전체가 합동으로 벌인다.
정월 초하룻날 아침 마을회관에 50세 이상 노인(남자 3명, 여자 9명) 12명을 모셔 「공동세배」를 드리는 것은 이 마을의 전통.
「공동세배」가 끝나면 40, 30대 등이 차례로 연하의 이웃들로부터 세배를 받는다.
이때는 이 마을 최고령자인 홍찬묵 할아버지(74)와 조양순 할머니(89)가 맨 상석에 앉아 「공동세배」를 지도한다.
세배가 끝난 뒤 온 마을 주민들이 어울려 초사흘까지 3일 동안 농악놀이·씨름대회·줄다리기 등 마을의 화목을 위한 갖가지 행사들이 펼쳐진다.
『자연과 싸우기 위해서는 사람끼리 단결해야지요』
홍옹은 화목을 앞세운다.
5년 전부터 시작한 표고버섯 재배는 마을공동소유다.
매년 3백50여만 원의 수익금은 이 마을 전체를 위해 쓰여지고 있다.
건평 30평 짜리 마을회관과 건평 25평 짜리 마을창고도 버섯 수익금으로 78년에 지었다. 고지마을 주민들의 숙원은 버스가 들어오는 것.
구례읍까지 나가려면 6분 떨어진 산동면 소재지까지 걸어나가는 실정.
취학 어린이와 주민들은 물론 산수유·표고버섯 판매상들에게 큰 불편을 주고 있다.
『학교가 멀어 새벽에 나갔다가 밤늦게 돌아옵니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자전거도 탈수 없어 고통스럽지요』
산동 중3년 구광모군(15)은 버스 통학이 소망이라고 말했다. <구례=정일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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