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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시장(제자=필자)(38)-자본시장 육성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60년대의 중권시장은 소란스럽고 사고 투성이었다.
말썽 또한 많았기 때문에 정부당국이나 국민들로부터 경원시 당했던 게 사실이다.
당시 증권업계에는 「정책권외」라는 말을 많이 썼다. 증권시장은 사실상 무원고립 상태였다.
이런 가운데서도 여명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68년11월22일에 「자본시장 육성에 관한 법률」이 법률2046호로 제정된 것이다.
이 법은 「기업공개와 주식의 분산을 촉진하고 국민의 기업참여와 자본조달의 원활을 기할 수 있는 투자여건을 조성함으로써 자본시장의 건전한 육성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기본 목적은 기업의 공개에 있었다. 공개가 잘되면 주식분산도 제대로 되는 것이고 분산이 잘된다는 것은 많은 국민들이 기업에 참여했다는 실증이 되는 것이다.
이 법의 주요내용은 첫째, 정부 영향아래에 있는 기업의 차등 배당을 인정한 것.
기업수익이 일정수준에 달하지 못할 경우 정부엔 배당을 못하더라도 기타 민간소액주주에게는 공 금리 이상을 배당하도록 규정한 것.
둘째, 정부·지방자치단체 또는 정부관리기업체에 납부할 보증금·공탁금으로 상장유가 증권을 대용케 하여 증권에 대한 공신력을 높였다.
셋째, 정부소유주식을 예산회계 법에 구애됨이 없이 적절한 수량을 시가 이하로 팔 수 있게 했다.
넷째, 종업원 지주제도를 규정한 것.
공모주식의 10%를 종업원들에게 우선 배정토록 하여 노사협조의 새 기틀을 마련하고 투자자의 저변확대를 도모했다.
다섯째, 기업공개를 적극 추진하기 위해 공개기업에 대해 세제상의 혜택을 주기로 한 것. 이 법에서 가장 중심을 이루는 것 중의 하나가 한국투자개발공사 설립에 관한 것이다.
이와 같이 이 법의 중요 골자는 주식의 공개와 분산,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기구의 신설과 행정조치 및 세제상의 특혜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법을 처음 구상한 사람은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당시 공화당 국회의원 이남준씨.
또 정부 쪽에서 이를 이해하고 밀어준 사람이 당시 재무부 이재국장이던 장덕진씨였다.
필자가 이 의원을 알게된 것은 62년 5월 파동을 전후한 때로 기억된다.
그 당시 이 의원은 증권업계에 대학동창이 있어 그 친구의 권유로 증권투자를 했던 것으로 필자는 알고 있다. 얼마 후 이 의원은 나의 고객의 한사람이 됐고 친숙하게 지내는 사이가 됐다.
그는 증권에 대해서 몹시 흥미를 가졌던 것 같다. 그러나 돈벌이보다는 증권이론이나 제도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필자와도 자주 토론을 가졌었는데 상당히 학구적인 면으로 파고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파동이 끝난 후에도 얼마간 그와 접촉이 있었는데, 특히 파동으로 피해를 본 많은 투자가들에게 특히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때에 투자가들로 만들어진 투자가협회에도 깊숙이 관여했으며 특히 앞장서서 정부에 피해보상 대책을 강구하라는 주장을 폈다.
그후 별로 접촉이 없었는데 63년 6대 국회의원 선거 때 고향인 진도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는 소식을 지상을 통해서 알았다. 반가웠다. 그러나 정식으로 만날 기회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65년초쯤으로 기억된다.
어느 모임에서 우연히 이 의원을 만났다.
모임이 끝난 후 그는 나에게 『강 사장, 나는 국회의원이 된 후 미국이나 일본에 가서 많은 증권관계 서적이나 자료를 들여다 나름대로 공부를 많이 했소.
아무래도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성장하려면 증권시장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오. 기왕에 국사를 처리하라는 소명을 받았으니 영원히 국가이익에 부합되는 일을 하나해 볼 결심이오. 정말로 증권시장을 육성시킬만한 법을 만들 터이니 좀더 기다려보시오』라고 말했다.
필자는 이 의원과 같은 의견이었다. 당시에는 아직 발행시장이 거의 없었지만 궁극적으로는 기업자금조달시장으로 키워야만 했다.
유통시장에서 첫째 주가가 폭등·폭락하는 양상 없이 안정되어서 투자자를 보호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자면 시장의 규모를 확대해야 했다.
또 주가안정을 위해서는 증권시장에 개입하여 조작할 수 있는 기관을 설립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필자는 생각했다.
이러한 논의가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은 64년 봄에 성안된 「주식투자보장 법」안이었다. 그후에 「주식투자촉진법」안으로 고쳐졌으며 또 그 뒤에는 조작기관의 명칭을 내세운 한국투자공사 법」안으로 바뀌어졌다가 결국 자본시장 육성에 관한 법률로서 매듭을 보게된 것이다.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친 자본시장육성법이 햇빛을 보는데는 무려 4년이란 긴 시간이 소요됐다. <계속> 【이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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