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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9)|제73화 증권시장|강성진<제자=필자>(27)|「영화증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필자가 영화증권의 사장으로 가게됐다는 말이 돌자 동아의 최 사장을 비롯한 일부에선 내가 운동이라도 해서 영화로 가는 것인 양 오해를 했다.
동명증권에서 내가 오랫동안 윤응상씨계 주문을 많이 처리해 주는 과정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던 모양이다.
정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발령해 놓고 사후 교섭을 해온 것이었다. 이때가 내 나이 35세였을 때다.
영화증권으로 자리를 옮긴 뒤 주로 매수측의 역할을 했다.
이 당시 증권계는 해결해야할 문제가 많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거래소의 자기주식 취득문제였다.
거래소는 5윌 파동으로 인해 수도결제룰 불이행한 증권회사들이 걸머지고 있던 대증주 약7억5천만 주를 안고 있었다.
증권금융사도 이러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매수측 증권회사가 수도결제를 못하게 됨에 따라 매수측의 담보로 잡혀있던 막대한 양의 대증주와 기타 주식을 갖게됐다.
따라서 거래소나 증금으로서는 이러한 주식을 하루빨리 처분하여 환금시키는 얼이 중요했다.
당시의 거래소 이사장엔 서재식씨의 뒤를 이어 재무부이재국장을 지내다가 온 박동섭씨가 직무대행으로 취임했다.
그리고 증금 사장은 하상용씨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느 날 양씨로부터 비밀리에 만났으면 좋겠다는 기별이 왔다. 나는 두 사람을 따로따로 만났다.
『거래소나 증금이 이처럼 엄청난 자기주식을 갖고 있어서는 시장을 정상화시킬 길이 막연하니 강 사장께서 꼭 좀 협력을 해주어야겠소.』
실인즉 대익주와 증금주를 아무도 모르게 감쪽같이 팔아달라는 부탁이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왔다. 아무래도 증권시장을 정상화시키는 방법은 거래소와 증권금융회사의 자기 주 문제를 해결하는 길밖에는 없다고 생각됐다.
그러나 그 많은 수량이 문제였다. 또 아무리 비밀리에 판다손 치더라도 끝까지 지켜질 것인지 의문이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만도 없었다.
나는 거래소와 증금의 주문을 받아 팔기 시작했다. 의외로 잘 팔렸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어떤 기록은 매수측 주력역할을 하던 영화증권이 증권금융 10억원의 방출이 지연되자 자금부족을 예상, 돌연 투매로 나서면서 보도측으로 표변했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이와 같이 증권시장을 살려야한다는 대국적인 관점에서 팔고 나선 것이다.
그런데 영화증권이 대증주와 증권금융주를 내다 파는데 큰 문제가 생겼다.
윤씨 계열회사인 영화에서 내다 파는 물건을 같은 윤씨 계열증권회사인 홍익과 범-증권에서 꼬박꼬박 사들이는 것이 아닌가, 아연실색했다.
같은 계열회사끼리 팔고 사고했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물론 처음에는 이런 사정을 전연 몰랐다.
윤씨계의 매수측은 홍익증권의 승상배, 범일증권의 최진수, 대양증권의 양한모, 일흥증권 의 정계용 사장 등 실로 쟁쟁한 조직력이었다.·
이들은 조석으로 만나 회의률 하면서 작전을 짜나갔다.
처음에는 나에게도 회의 참석을 강요하여 한 두 차례 나갔다.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은 증권시장을 정상화시키려는 순리에 역행하는 일이니 그만두시오』하고 회의에서 반대하고 나서자 그후부터 필자는 부르지 않았다.
이들의 작전은 딴 것이 아니었다. 당시는 청산거래여서 사서 값이 오르면 차금을 보도측이 내고 반대로 띨어지면 매수측이 차액을 내게 돼있었다.
따라서, 이들은 차금 공세를 통한 차금 따먹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나는 이 차금공세에 몰려 고전을 봤다. 같은 계열회사 사이에 이지경이 벌어졌으니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중용이 지덕이라 했다. 코앞의 차금 따먹기에 눈이 어두워 자기분수에 맞지 않게 막대한 양의 주식을 사들인 결과는 뻔했다. 필자는 여러 차례 자제를 촉구했다.
상대방은 내가 자금압박을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만 알았던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대로 가면 수도결제가 불가능하리라는 것은 명고관화 했다.
그토록 그들은 앞 뒤 사정 볼 것 없이 마구잡이로 사들여갔다.
영화도 내친걸음이라 팔아댔다. 윤씨계는 막대한 매수 건옥을 계열회사에 분산시키면서 계속 사들였다. 한판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싸움 중에서도 상 싸움이었다.
주가는 끝내 견디지를 못하고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어제까지 차금 공세로 기세를 올리던 매수측은 차금을 물어나가야 했다.
지금까지 받은 차금은 매수자금으로 썼기 때문에 매수측에 돈이 있을리 없었다. 일시에 수세에 몰리게 된 매수측은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이때 윤씨로부터 은근히 제안이 왔다. 매수측 건옥을 영화에 옮겨 놓고 차감해서 건옥을 지워보려는 속셈인 것 같았다.
그럴 경우 영화의 파탄은 물론 모처럼 정상화되어 가는 증권시장은 또다시 혼란에 빠질 것은 뻔한 일이었다.
나는 영화증권의 김영열 사장 대리인을 불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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