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우주경쟁 23년 제2막이 올랐다|「스푸트니크」발사서 「콜럼비아」호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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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제2의 미소간 우주경쟁의 신호탄이 올랐다. 미 우주왕복선 「콜럼비아」호가 컴퓨터 등의 고장으로 계속 지연되는 등 진통을 겪었으나 우주왕복선 발사는 우주경쟁에서 기선을 잡아보겠다는 미국의 의지를 집약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61년 소련이 최초의 유인우주선「보스토크」1호에 「유리·가가린」을 태워 발사한 이래 우주탐험이라는 처녀지 개간에서 우의를 차지해 보려고 두 나라는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다. 소련은 지금까지의 우주경쟁에서 달 정복과 우주도킹 등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미국을 앞서왔다.
최초의 인공위성발사를 비롯, 유인우주선·유인우주정거장·「킬러」위성 (다른 위성을 파괴하는 위성) 등이 그것. 미국이 커대한 자금을 들여 인류최초의 달상륙을 성공시킨 「아폴로」계획을 추진하는 동안 소련은 달상륙은 외면한 채 군사목적 등을 위한 실용적 우주개발에 주력해왔다.
미국은 「아폴로」계획이 끝난 75년 이후 6년간 유인우주선을 띄우지 않은데 비해 소련은 그 동안 43명이 우주여행을 했다.
소련은 57년 인류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1호를 쏘아 올렸고 미국은 1년 후인 58년 첫 번째 인공위성 「익스풀로러」1호를 쏘아 올렸다.
그후 61년4월12일 소련은 인류최초의 유인우주선 「보스토크」1호를 궤도에 쏘아 올려 뒤따르는 미국에 일격을 가했다.
미국은 62년 「존·글렌」이 처음으로 궤도비행에 성공했으나 소련보다는 1년 뒤진 것이었다.
소련이 다시 65년 우주산책을 성공시켜 기선을 잡자 미국은 이에 분발, 2개의 우주선몰 처음 랑데부시킨 후(65년) 2개의 우주선이 도킹하는데 성공하는 등(66년) 처음으로 소련을 따라잡아 달착륙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노력으로 미국은 69년 「아폴로」11호를 달에 착륙시키는데 성공, 인류가 달에 발자국을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달착륙 이후 우주탐험에는 큰 진전이 없었다. 미국은 월남전 등으로 경제가 위축되자 유인우주선 대신 태양계의 먼 곳에 있는 행성들의 조사를 위해 무인우주선개발에 노력을 집중시켰으며 소련도 「소유즈」 「살류트」계획에만 전념, 우주경쟁은 사실상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소련은 67∼71년에 「소유즈」1∼11호로 우주정거장조립에 성공한 반면 미국은 「스카이랩」1∼3호(73년5∼11월)로 장기우주체류(84일)를 실험했다. 소련은 73년부터 다시 「소유즈」계획을 재개, 75년까지 12∼19호를 쏘아 올리면서 각종 관측 및 실험을 전개했다.
소련은 71년부터 우주기지의 기초가 되는 우주정거장을 건설하려는「살류트」계획을 시작, 「소유즈」호를 계속 쏘아 올리면서 도킹 등을 실험하고 우주에서 최장기 체류기록(1백85일·80년)을 세우는 등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있다.
미국 우주비행사들의 총 우주비행시간은 2만2천5백4시간인데 비해 소련은 2배가 넘는 4만6천8백93시간으로 상당한 개발성과를 축적해 왔다. 소련이 최근 실험한 「킬러」위성은 우주공간에 떠있는 상대국위성을 파괴시킬 수 있는 것으로 미국의 정보체제와 군사력배치들에 상당한 위협이 되고있다.
침묵을 지키던 미국은 지금까지 발사한 어느 우주선보다 훨씬 무겁고 복잡한 우주왕복선「콜럼비아」호를 개발해 우주촌건설에서 일거에 우위를 차지하려는 의욕에 불타있다. NASA는 금세기 말께 우주왕복선이 취항하게될 항구적인 우주기지역할을 할 수 있는 대형우주작전본부를 쏘아 올릴 계획도 세우고있다.
소련도 현재의 기술수준으로는 우주왕복선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또 10∼20명의 우주인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우주정거장을 건설할 계획도 세우고있다.
소련의 공산당기관지 「프라우다」지는 『미국의 우주왕복선 발사는 소련에 대한 군사적 우위를 견지하려는 미국의 환상』이라고 비난하고 「콜럼비아」호의 발사지연을 은근히 비꼬기도 했다.
지금까지 우주여행을 한 인간은 미국인 43명, 소련인 50명, 기타 공산국가인 8명이다. <김광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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