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씨의 시 『하급반 교과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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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달에 발표된 시 가운데 김명수씨의 『하급반 교과서』(세계의 문학 봄호), 황동규씨의 『겨울의 빛2』(문예중앙), 홍신선씨의 『이름을 팝니다』(문예중앙), 박명진씨의 『손』(문학사상), 박의서씨의 『적막』(문학사상), 양승우씨의 『장송무』(한국문학)등이 수준 작으로 평론가들에 의해 지적됐다.
김명수씨의 『하급반 교과서』는 하나의 비유 속에서 현재 상황을 날카롭게 포착한 시다.
어린이들이 책을 읽는 모습에서 「이미지」를 얻은 이 시에서 김씨는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삶의 핵심적인 문제를 깊이 인식하는 능력을 보이고 있다.
이 시 가운데 <『아니다 아니다!』하고 읽으니/『아니다 아니다!』 따라서 읽는다/『그렇다 그렇다!』하고 읽으니/『그렇다 그렇다!』따라서 읽는다>라는 구절은 시인이 나타내고 싶을 것을 압축한 부분으로 마지막 귀절<이 봄날 쓸쓸한 우리들의 책읽기여 우리나라 아이들의 목청들이여>와 연결되어 완성을 이룬다.
이러한 표현은 김씨의 사물의 의미를 꿰뚫어보는 직관력을 뚜렷이 나타낸 부분이다.
김씨의 이 시는 매우 쉬운 시어와 단순한 서술이 눈에 띈다. 간결한 가운데 암시적 계시로써 「현실의 어두움」을 나타낸다. 하나의 체험을 시적으로 고정하고 선명한 인상을 조각해 낼 수 있는 언어를 마련하는 힘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김씨가 이전에 발표했던 작품, 예를 들어 『일식』『무지개』 등에서는 아름다운 표현 속에 내면의 어두움을 승화시킨 대신 절박한 현실감이 약화되어 있다는 지적을 받았으나 이 시에서는 현실감이 생생히 살아있어 그의 시 의식이 최근들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황동규씨의 『겨울의 빚2』는 『겨울의 빚I』에 이은 작품으로 서정주의에 탐닉하지 않고 산뜻하고 절제 있는 시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황씨는 「세계의 문학」에도 『눈감고 섬진강을 건느다』 등 좋은 작품을 발표했다.
홍신선씨의 『이름을 팝니다』는 이름으로 상징되는 속박을 벗어나겠다는 자유의지를 보이고 있다. 형태에 있어서도 독특하다.
박희진씨의 『손』은 손에 관해 느끼는 상상력을 총동원한 시로 박씨의 실험정신이 그대로 드러났다. 우리 시가 쉽게 쓰여지고 또 노래 불려지도록 노력해온 박씨는 갈수록 시인정신이 젊어지고 있다.
박의양씨의 『적막』은 아주 짧은 분량 속에 압축 미를 보여주었다. 삶의 허망감과 추락감을 일상생활 속에 쓰는 용어의 배열로 잘 표현했다.
양승만씨의 『장송무』는 죽음을 생의 한 절정의 순간-춤으로 나타나는-으로 보는 새로운 시각이다. <도움말 주신 분="유종호·김용식·김주연">

<하급반 교과서>
아이들이 큰 소리로 책을 익는다
나는 물끄러미 그 소리를 듣고 있다
한 아이가 소리내어 책을 읽으면
딴 아이도 따라서 책을 읽는다
청아야 목소리로 꾸밈없는 목소리로
『아니다 아니다』라고 읽으니
『아니다 아니다』따라서 읽는다
『그렇다 그렇다』라고 읽으니
『그렇다 그렇다』따라서 익는다
외기도 좋아라 하급반 교과서
활자도 커다랗고 읽기에도 좋아라
목소리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고
한 아이가 읽는대로 따라 읽는다
이 봄날 쓸쓸한 우리들의 책 읽기여
우리나라 아이들의 목청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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