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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상륙 서두르는 「컴퓨터」은행-자동 현금인출기 연내에 첫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텔레비전의 광고방송을 보다가 문득 새로 나온 모델의 전자계산기가 사고 싶어졌다.
얼른 전화기의 코드를 뽑아 은행에서 텔레비전에 부착시켜 준 단말기에다 꽂은 다음 전화기 다이얼을 돌렸다.
『따르릉……』 신호가 가면서 TV화면에는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라는 자막이 나온다. 거래은행과 통화가 된 것이다.
우선 통장에 돈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궁금해 단말기의 키펀치를 두드렸다. 즉시 예금잔고가 화면에 비쳐 진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다시 키펀치를 두드려 사고 싶은 전자계산기의 가격과 회사의 구좌번호를 알려주고 물건의 주문까지 은행에 부탁한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은행 컴퓨터가 통장에서 돈을 꺼내 회사의 구좌에 넣어주고 주문부터 시작해 영수증까지 끊어 보내줄 것이다.
전화기의 코드를 단말기에서 뽑아 다시 원래의 플러그에 꽂았다.
○…『건물이 없는 은행』-그러나 돈에 관련된 서비스라면 무슨 일이든 은행이 맡아서 처리해 준다. 단순한 공상이 아니라 충분히 실현 가능한 미래은행의 설계다.
온갖 잡다한 일, 계산하는 일, 전표 끊는 일 등은 모두 컴퓨터가 해낸다. 일은 훨씬 많아 질 테지만 오히려 은행원의 일손은 편해지고 남아 돌아갈 것이다.
남는 시간. 남는 인력만큼 더 고객들에게 친절해질 수 있다. 어느 은행이나 일은 컴퓨터가 해주니까 고객들에게 얼마만큼 친절하나로 경쟁의 승패가 판가름난다.
일본의 「다이찌·간꾜」은행의 경우 전산화를 실시하고 나서 10년 동안 업무량은 1백%가 늘어났으나 인원은 10%밖에 늘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의 은행원은 훨씬 편하고 고객들과 상담하는 시간도 훨씬 많아졌다.
지금처럼 외환업무 모르면 지점장 노릇 못 한다는 것은 옛말이 되고 컴퓨터를 잘 알아야 유능한 지점장 행세를 할 수 있게 된다.
○…미래은행의 설계에는 완벽한 구좌간 자동대체기능을 빼 놓을 수 없다. 소위 지로 시스템이라는 것이며 외국은행이 잘 되어있다는 것도 바로 이것이 잘 발달되어 있다는 말이다.
쉽게 말해 갑이 을에게 돈 갚을 일이 있으면 서로 만날 필요도 없이 은행이 중간에서 갑의 구좌로부터 을의 구좌로 그 돈을 옮겨 넣어주면 되는 것이다.
이 같은 은행의 자동대체기능이 발달되면 고객은 매우 간편해진다.
가령 일정한 예금잔고를 유지하겠다는 계약을 은행과 맺었다고 하자. 월부책 값이니 전기료·수도료·오물세·자녀들의 공납금 할 것 없이 내야할 때가 되면 제 날짜에 은행의 컴퓨터가 제꺽제꺽 물어줄 것이다.
직접 갖다내야 하는 수고를 덜 뿐 아니라 기일이 지나 쓸데없이 과태료를 무는 일도 없게 된다.
할부 판매하는 세일즈맨도 은행의 컴퓨터와 연결된 휴대용단말기만 가방에 넣고 다니면 된다.
정기예금을 들어 이자수입으로 생활하는 사람의 경우 매달 위험하게 정기예금증서를 들고 다닐 필요도 없어진다.
은행에서 매월 이자를 보통예금 등의 구좌에 넣어달라고 부탁하면 컴퓨터가 이자날짜를 기억했다가 어김없이 이자돈을 보통예금통장에 넣어준다.
○…S은행의 은행장실. 집무책상 위에 텔레비전 비슷한 단말기 한대가 놓여있다. 부하직원을 번거롭게 불러 올릴 것 없이 궁금한 것이 있으면 단말기를 두드린다.
『우리은행 대리 중에서 누가 가장 어리지?』
『거래기업체 중에서 재무구조가 제일 나쁜 데가 어디야?』
『청량리지점 사무실이 비좁다던데 정말인가?』
더 궁금하고 구체적인 자료를 알고 싶을 경우 첫 번째 나오는 화면 중에서 그 부문에다 만년필모양의 소형 막대기를 갖다 대면 컴퓨터에 수록된 자료들이 척척 쏟아져 나온다.
○…무인은행이 많아질 것이다. 자동 입금기나 자동지급기·잔돈 바꾸는 기계 등이 요즈음 길거리의 커피 자동 판매기들처럼 세워진다.
이미 일본에서는 이 같은 은행간 과당경쟁을 막기 위해 각 은행의 공동출자로 「닛뽄·캐시·서비스」라는 전문관리 회사까지 생겨났다.
우리나라도 상업은행이 금년 안에 우선 현금지급기 20대를 들여 올 계획이어서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사용방법도 간단하다. 커피 판매기처럼 버튼을 누르면 『당신의 예금 카드를 넣으시오』 라는 사인이 나온다.
지시대로 카드를 넣으면 카드에 새겨진 암호가 본점 컴퓨터에 의해 진짜임이 곧바로 확인된다.
이내 『얼마가 필요하시죠』 라고 불이 켜질 때 필요한 금액대로 버튼을 누르면 돈이 척척 세어져 나온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구태여 돈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닐 필요가 없어진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처럼 유난히 현금을 좋아하는 나라도 없다. 수표도 자기수표 아니면 믿지 않아 서울시내 어음·수표거래량 중에 당좌수표 거래량은 5%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러니 은행은 쓸데없는 잔무처리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흔히들 물가에도 못 미치는 금리인데 뭐하러 은행에 돈을 맡기느냐고 말한다. 인플레 생각하면 오히려 손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금리가 낮기 때문에 은행을 외면하는 것만은 아니다.
앞서 설계한 미래은행처럼만 된다면 왜 은행을 안 찾겠는가. 금리보다 더 큰 편익을 얻을 수 있는데도 말이다.
은행에다 돈을 맡기면 편하고 이로운데도 예금을 안 하겠다는 것일까. <이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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