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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리틀야구, 29년 만에 우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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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꿈의 구장으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데 무려 29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시간이 흐르며 당시 우승 주역들은 어느덧 40대로 접어들었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등 성인무대에서 국위를 선양한 선배들의 위업이 미국땅에서 또다시 ‘주니어 데자부’ 드라마로 돌아왔다.

만12세가 주축이 된 한국 리틀리그 대표팀(서울 올스타)은 25일(한국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사우스 윌리엄스포트에서 벌어진 제68회 리틀리그 야구 월드시리즈 결승전에서 장단 10안타를 몰아치며 일리노이주 그레이트 레익스 지역의 시카고시 대표인 재키 로빈슨 웨스트(JRW) 팀을 8-4로 완파, 정상에 올랐다. 관중은 2만7000명.

1984ㆍ1985년 2연패를 이룬뒤 통산 3번째 세계 챔피언에 오른 한국 리틀리그는 준결승에서 대회 3연패를 노리던 최강 일본을 12-3으로 누른데 이어 홈팀인 미국마저 4점차로 제치며 오랜 침체기를 딛고 또다시 ‘야구 르네상스’를 연출했다. 반면 1967년 이후 47년만에 결승에 오른 시카고 지역팀이 된 미국의 JRW는 당시 일본에 첫 우승을 헌납한데 이어 한국에도 패하며 연속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강속구 투수인 우완 황재영ㆍ최해찬의 필승 계투작전으로 나선 한국은 1-0으로 앞서던 3회말 유격수 앞 느린 타구와 투수 땅볼 에러ㆍ볼넷으로 1사 만루의 최대위기를 맞았으나 최해찬이 삼진과 연속 내야 땅볼로 한점만 내주며 급한 불을 껐다.

‘위기 다음에 기회’라는 야구 격언대로 한국은 4회 이후 상대선발 브랜든 그린을 연속안타와 적극적인 주루 플레이로 공략하고 5회초 신동완의 솔로포로 4-1로 달아났다. 기세가 오른 한국은 6회초에도 김재민의 좌전 적시타와 투수 최해찬의 투아웃 이후 싱글홈런으로 8점째를 얻으며 승세를 굳혔다. 미국은 결국 아웃 카운트 하나를 남긴채 선발 그린을 트레이 온두라스로 교체하는 수모를 겪었다.

"대~한민국"을 외치는 한국 관중석이 열광의 도가니로 변한 가운데 매경기 홈런으로 장타력을 과시한 한국은 득점 직후 특유의 ‘활쏘기 제스처’로 기쁨을 만끽했다. 최해찬은 마지막 6회말에 연속타로 3점을 허용했지만 시속 72마일을 넘나드는 강속구에 좌우 구석을 찌르는 컨트롤로 잘 버티며 승리투수가 됐다.

LA 다저스ㆍ오클랜드 애틀레틱스 등 현지시간으로 일요일 낮경기를 앞둔 메이저리그 선수들도 클럽하우스내 라커룸에서 한국의 우승장면을 보며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중계방송을 맡은 메이저리그 출신의 거포 노마 가르시아파라ㆍ배리 라킨은 “한국팀에 1인치(약2.5cm)의 틈을 보이면 궁극적으로 1마일(약 1.6km)을 허용하게 된다”라며 한국팀의 짜내기 플레이를 칭찬했다. 이들은 또 “한국은 과감한 스윙과 주루 플레이 등 미국보다 더 ‘시카고 스타일’의 야구를 구사한다”고 강조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예선을 거쳐 출전한 한국 입장에서는 결과적으로 대회 3연패를 노리던 숙적 일본을 연파한 것이 가장 컸다. 예선 첫 경기에서도 내용상 완패했지만 스코어에서는 4-2로 이겼으며 국제그룹 결승전이기도 한 리턴매치에서는 주전투수를 소진하고 이틀 연속 혈전을 치르며 체력부담도 늘어난 일본에 12-3으로 대승할 수 있었다.

미국 본토에서 열린 월드시리즈에서 5연승으로 우승한 한국은 지구촌 수천개팀 가운데 유일한 무패팀으로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주전들이 10여년뒤 미래의 프로 주축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높였다.

비록 한국의 벽에 막혔지만 석패한 미국팀도 신데렐라 팀으로 각광받았다. 주로 여유있는 백인 가정이 자리잡은 대도시 교외지역 클럽팀이 압도하던 리틀리그는 15년전 슬럼지역의 어린이 야구 활성화를 위한 지역정부의 보조금 지원 프로그램이 입법화된 이후 흐름이 변화했다.

대도시의 가난한 동네 유소년 야구가 활성화 되었으며 올해 로빈슨의 이름을 딴 JRW가 결승까지 오르며 사실상 그 첫 수혜자가 된 셈이다. 빈곤 지역에서 어렵게 야구부를 육성하며 전원 흑인 소년으로만 구성된 JRW는 두차례의 패자부활전에서 모두 소생하며 준우승, 내년 시즌을 바라보게 됐다. 람 이매뉴얼 시카고 시장은 “우리 지역의 긍지”라고 이들을 칭찬했으며 팀 이름의 주인공인 재키 로빈슨 역시 1962ㆍ65년 두차례나 리틀리그에 참가한뒤 브루클린 다저스에서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이끈바 있다.

한편 결승에 앞서 벌어진 3ㆍ4위전에서는 일본이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를 5-0으로 완봉하고 동메달을 차지했다. 일본은 관중석에서 한국팀의 파란색 저지를 입은채 TV 카메라 앞에서 같은 아시아의 한국을 성원하는 우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날 공중파인 ABC-TV(채널7)이 전국에 생중계한 결승전은 미국내에서만 5백만명 이상의 시청자가 지켜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LA중앙일보=봉화식 기자 bong@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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