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섬에 풍어를 주소서"|잊혀진 탐라 영 등 송별 제 올해 재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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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공경하는 신이여, 제주 섬에 강림하소서』-. 한해의 풍어와 무사고를 기원하는 탐라 고유의 무속 영등 송별 제가 19일 삼다의 섬에서 열렸다. 영등 송별 제는 지난해 11월17일 중요무형문화재 71호로 지정된 뒤 올해 처음으로 제 격식을 갖추어 재현된 것.
제주시 건입동 동 부두 동산 마루 터 칠성머리 당.
제주의 어업과 농업을 주관하는 신인 도원수 감찰지방관이 정좌해 있다는 이 제당은 탁 트인 망망대해의 전망이 해신물의 강림장소로는 안성맞춤이다.
이날 영등 송별대 제에는 90여명의 해녀와 어부들이 모여들어 바다에서 살다간 조상들의 수만큼 젯밥을 차린 제강을 제단 위에 바치고 영 등신에게 한해의 평안을 기원했다.
50평 정도의 제당 위에는 해신의 하강로인 큰 깃대를 바다로 행해 꽂고 본당신인「도원수 감찰지방관」, 용왕, 해신부인의 신위, 해신, 선왕 신위, 지신인 남당, 하동 지신 위를 모시고 재 당을 가로질려 12해신의 신위를 매달았다.
용왕 맞 이가 시작되자 무당은 용왕 문 둘레를 돌며 춤과 기문으로 용왕의 강림을 빌며 감상기와 함께 휘두르던 명도 칼(신도)을 바닥에 던져 용왕이 강림했는가를 확인했다.
무당은 어부와 해녀의 의례가 끝나자 용왕이 바다에 전복·소라·미역 등의 번식을 기원하는 시드린 굿을 한 뒤 산판(점치는 도구)을 던져 어패류의 퐁·흉년을 점치자 올해는 풍년이라는 점괘가 나왔다.
용왕 맞 이가 끝나자 한해의 모든 액을 막는 보액 막음 굿을 하고 마지막으로 모형 배에 제물을 실어 해신들을 송별하는 배 방선 굿을 지냈다.
배 방선 굿을 지내는 모형 배는 짚으로 만든 길이 50cm정도로 비단색동 돛을 달았다.
배에 올리는 제물은 떡·밥·제주·과일·생선 등. 바닷가로 나가 모형 배를 띄운 어민들은 영 등신에게 내년에 다시 와 주기를 빌며 바다로 띄워 보냈다.
22대째 가업으로 무당을 하는 영등굿 기능보유자 안사인씨(53)는『모형 배가 길을 잃어 다른 마을에 닿으면 그 마을에는 흉년이 든다 하여 다시 영등 송별대제를 차려 주어야 한다』며 배 방선 굿에 가장 정성을 들인다고 했다.
제주도 전설로는 영등 신은 어부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할으방신.
1년에 한 차례씩 찾아오는 내방신인 영등할으방은 음력 2월 초하룻날에 입도 하여 보름간 제주에서 머무르다 열나 흘 날 제주에서 송별 대제룰, 보름날엔 소섬(우도)에서 송별대제를 대접받고 강남으로 떠난다는 것.
영등 신의 본풀이 신화는 영등할으방이 먼 옛날 풍파를 만나 괴물들이 사는 외눈박이 땅에 불려 간 어부들을 구해 주고 자신이 대신 희생되었다고 전해진다.
영등 신이 보름간 제주열대 해안지방에 머무르는 동안 어민들에게는 금기가 주어진다.
『영등할오방이 있을 때는 갯가의 물 천(어패류)을 잡지 않습니다. 영등할으방이 물 천을 다 까먹은 때문에 속이 비어 있지요. 30년째 영등 제를 지내 오는 강달인씨(51·해녀)는 금기를 꼭 지켜야 집안에 풍파가 없이 편안히 보낼 수 있다고 했다.
이외의 금기로는 어로작업을 해서도 안되고 빨래와 초가지붕 잇는 것도 벌레가 파먹는다 하여 삼간다는 것이다.
제주대 민속학교수 현용준씨는『영등굿은 고려시대부터 행해졌으며, 호남의 굿이 판소리 중심이고 서울 굿이 유흥 중심인 반면 제주 굿은 논리천이고 체계적인 연극 성이 짙어 굿의 짜임새가 좋다』고 말했다. <제주=엄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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