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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떠난 정류장은 '1회용 컵' 전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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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 20일 서울 서교동 ‘서교동 예식장 타운’ 버스정류장. 일부 시민이 버리고 간 1회용 플라스틱 컵들이 줄줄이 놓여 있다. [윤소라 인턴기자]

지난 20일 오후 3시50분 서울 합정동 ‘합정역, 남경호텔’ 버스정류장. 양화대교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던 한 20대 여성이 들고 있던 1회용 플라스틱 컵을 슬며시 의자에 내려놓았다. 커피전문점에서 들고 나온 ‘테이크아웃 컵’이었다. 그가 내려놓은 컵 옆에는 이미 누군가가 버리고 간 컵 두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기자가 “컵을 그냥 버리는 거냐”고 묻자 그는 “손이 끈적여서 잠깐 놓은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5분 후 그는 버스를 향해 뛰어갔다. 1회용 컵은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이 버스정류장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기자가 이날 둘러본 신촌·홍대·이대·영등포 인근 서울시내 중앙 버스정류장 30곳 중 18곳에 버려진 1회용 컵이 평균 3~4개씩 널려 있었다. 일부 버스정류장은 쓰레기통 대용으로 놓인 철제 페인트통이 넘쳐 쓰레기가 사방으로 굴러다녔다. 버스를 기다리며 음료수를 마시던 시민들이 컵을 버리고 가버린 탓이다. 실제로 종로1가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회사원 문모(29)씨는 “다 마신 컵을 들고 버스에 타면 얼음이 녹아서 물이 줄줄 흐르고 영 불편해 그냥 버리고 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버스정류장에서만 생기는 일은 아니다. 점심시간 직후인 오후 1시쯤 서울 서린동 광통교 앞 공원 주위에서 담배를 피우며 커피를 마시던 직장인들도 들고 있던 컵을 그대로 버리고 사무실로 향했다. 주변에는 컵 30여 개가 버려져 있었다. 한 30대 남성은 “공원에 쓰레기통이 없어서 길에 버렸다”며 “점심 때 마신 1회용 컵을 사무실까지 들고 가긴 곤란하다”고 말했다.

 1회용 컵 무단투기는 여름에 특히 늘어난다. 더운 날씨 탓에 음료 소비가 늘기 때문이다. 환경미화원 서모(54)씨는 “1회용 컵 쓰레기는 여름철에 세 배쯤 많아진다”며 “하루 11시간 근무하면 평균 쓰레기 2000L를 처리하는데 그중 절반이 1회용 컵 쓰레기”라고 설명했다. 환경미화원 이철규(69)씨도 “오전에만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컵을 60개 이상 치웠다”며 “날씨가 무더운 날에는 100개 이상을 수거하는데 컵은 부피가 커서 쓰레기봉투도 자주 갈아줘야 한다”고 했다.

 대책은 무엇일까. 환경미화원들은 쓰레기통을 늘리고, 사실상 방치돼 있는 쓰레기 투기에 대한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30곳의 버스정류장 중 쓰레기통이 없는 곳(13곳)에는 버려진 1회용 컵이 배 이상 많았다. 전동훈 마포구청 청소행정과 주무관은 “쓰레기를 줄일 대안은 텀블러 사용 확대와 ‘재활용품 전용’ 쓰레기통 증설”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중앙버스정류장 329곳에 설치된 쓰레기통은 482개다. 하지만 서울시 측은 어느 정류장에 몇 개의 휴지통이 설치됐는지, 파손된 것은 몇 개인지 등 자세한 내용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관련 업무를 외부업체에 맡기기 때문이다. 서울시 아웃소싱 업체인 J사 측은 “시민들이 다산120센터 등에 민원을 넣으면 파손된 쓰레기통을 고치거나 새로 설치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대안은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이다. 기현민 종로구청 청소행정과 재활용담당 주무관은 “독일은 페트병 하나를 수집하면 300~400원가량을 돌려준다”며 “독일처럼 정부에서 빈 용기에 ‘회수비’를 부가하는 방법이 가장 확실하다”고 설명했다.

채승기 기자, 문채석(고려대 영문과)·윤소라(숙명여대 영문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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