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점벌레」가 되지 말자|오경아<이대 대학원 재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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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일정한 면적에 갑자기 사람이 늘어나니 인구밀도가 높아져 여기저기 만원사례다. 그래서 새봄의「캠퍼스」는 더욱 활기차 보인다. 언제나「캠퍼스」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은 신입생들이란 생각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3학기 째를 맞는 대학원생이니까 신입생 후배를 다섯 번째 맞아들이는 셈이지만 이들에 대한 올해의 감회는 그 어느 해보다도 다른 데가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안스럽다고 할까? 오직「대학입학」이라는 절대명제 아래 모든 욕망을 억 눌려 온 이들이 거기서 해방되기가 무섭게 다시「졸업정원제」라는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졸업정원제」의 근본취지는 공부하는 대학, 면학하는 대학인들을 키워 내기 위한 것임을 잘 안다.
그러나 일정하게 짜여진 규율의 틀 속에서 필경은 점수벌레로 키워졌을 대다수의 신입생들이「공부 안 하면 탈락된다」는 제도 하나로「스스로 크게 공부하는」대학인이 될 수 있을까? 오히려 A·B·C사이에서 희비 하는「학점벌레」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런 마음이다.
내 길지 않은 대학인으로서의 경험에서 볼 때 지식이란 넒은 운동장에 몰아치는 회오리바람이 아니다.
그보다는 다락방 속에서 오랜 세월동안 차곡차곡 쌓이는 먼지처럼 한꺼번에 쌓이기도 어렵지만 한번 쌓이면 털어 버리기도 힘든 것이 바로 지식이라고 나름대로 파악해 왔다.
지식은 오로지 여기에 바치는 인내와 시간을 통해서만 얻어낼 수 있다. 한번 스쳐 간 시간은 다시 붙잡을 수 없으며 어떠한 일이라도 그것은 현재 할 수 없는 사람은 영원히 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인간의 삶에 있어 지식이란 독서만이 아니라 산 경험을 통해서도 얻어지는 만큼 경험의 폭을 넓혀야 하겠다.
『경험은 본문이며 책은 해석이다』라는 말과 같이 삶은 그냥 살아지는 것이 아니며 매일 매일을 배우는 속에 느껴지고 묻혀 버리게 되는 자신의 체취인 것이다. 지식의 확대를 통한 철학과 경험의 영역을 넓혀 자신을 정립해 나가는 곳이 대학이 아닐까.
우리는 이제 격동의 시간·정신부재의 시대에 놓여 있으며 여기서 우리가 개척하고 사랑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하리라. 그것은 바로 외적 내적 자극과 충동을 적절히 수용하고 물리쳐서 자신을 찾아 나가는 자기애의 과정이라 생각한다. 사람이 서서히 와해되는 순간에는 이 자기에의 모습이 없으며, 나날의 삶 속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자기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화사하게 피어나는 봄의「캠퍼스」를 민들레꽃씨처럼 무리 지어 부 유하는 신입생들에게 가장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철저히 자신을 사랑하고 철저하게 자신을 내던져 모든 것과 부딪쳐 보라는「자기확인」의 충고다.
그런 넓은 공부 끝에 얻어진 지식이야말로 자신을 대학인으로서 남게 해줄 것이며 학점이라는 새로운 제도에서 해방시키는 길임을 믿기 때문이다.
▲76년 경기여고 졸
▲80년 이화여대 불문과 졸
▲현재 이화여대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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