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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 백출·수법도 다양한 선거운동|이색·탈법의 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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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3·25선거 투표일을 1주일 남짓 남겨놓고 후보들의 막바지득표작전이 치열하다. 선거벽보·선거공보·현수막과 합동연설회 이외에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게돼 있는 선거법의 허점을 이용해 기발한「아이디어」가 백출하고 있다. 「당원용」「팸플릿」, 홍보자료가 일반 유권자의 가가호호에 투입되고「선거관광」도 한창이다. 입당원서가「일금 5청원」에 팔린다고 후보들끼리 비난하고 있고 당원단합대회는 개인 연설장이 되고 있다. 이색·탈법선거운동사례를 간추려 본다.

<확성기까지 동원 단합대회>
○…선거법 상 허용된 선거운동방법이 제한돼있어「정당활동」명목의 단합대회가 정당후보자들의「프리미엄」으로 애용된다.
어느 정당후보는 가로변이나 시장주변에「플래카드」등을 걸어놓고 5백∼6백 명의「당원」을 모아 확성기까지 사용해 소견을 발표한다. 영락없이 개인연설회장이다.
경북의 모 후보는 이 단합대회의 장소를 학교운동장으로 정해놓았다가 학교 등 특수시설을 이용할 수 없게돼 있는 선거법을 뒤늦게 의식해 갑자기 장소를 바꾸기도 했다.
강릉-양양-명주의 이범준씨(민정)의 경우 41회의 단합대회에서 1만2천여 명을 상대했는데 어느 정당을 막론하고 정당후보는 모두 당원 단합대회를 활용한다. 단합대회에는 당원 아닌 일반유권자들 수가 더 많은 경우가 있는데 주최측은 『오는 사람을 일부러 쫓아낼 수야 없지 않느냐』는 변명. 단합대회에서는 참석자들에게 「당원용」이라는 표지가 들어간「타월」·비누·후보자소개 「팸플릿」 등이 배부된다.

<자기기사실린 주간지 살포>
○…이렇게 「당원용」으로 제작한 유인물을 비 당원에게까지 살포하는 사례는 부지기수.
15일 성북구연설회장에서 정대수 후보(민권)는 「당원용」이라고 찍힌 4개 정당후보들의「팸플릿」을 연단에 들고 나와 『이것이 공명선거냐』고 고함을 지르며 청중 속으로 집어던졌다.
민한당 중앙당은 소속 후보들에게「팸플릿」에 「당원용」이라고 인쇄해서는 안 된다고 지시하면서도 『지구당에서 고무도장으로「당원용」이라고 찍는 것은 알아서하라』고 알쏭달쏭하게 지시.
대구 중·서구의 합동연설회에서 무소속의 이종섭 후보는 누런 봉투 속에 들고 온 비누와 「팸플릿」을 꺼내 보이며 『이것이 모 후보가 당원용이라고 집집마다 돌린 것』이라고 폭로.
몇몇 후보들은 자기 소개가 잘됐거나 유리한 기사가 실린 주간지, 신문들을 수 천부씩 사서「확장용」이란 도장을 찍어 유권자들에게 돌렸고, 기사일부를 복사해서 돌리는 절약형 후보도 있다.

<입당원서와 돈 교환 많다고>
○…일반유권자에게는 금품을 제공하지 못하지만 당원에게 주는 활동비는 금지조항이 없는 법의허점을 이용해 입당원서와 금품이 교환되는 사례가 많다는 후보자의 주장. 충북 모 지구에서는 입당원서를 내면 5천 원을 주더라는 소문이 한동안 나돌았고 그 밖의 지구에서도 입당원서 1장이 5천∼8천 원을 호가하고 있다고 상대방의 공격자료로 내세우고 있다.
경남의 모 지구당 개편대회에서는 아예 입장하는 사람에게 당원, 비 당원 가릴 것 없이 5천원권 1장이 든 봉투를 대회자료와 함께 주기도 했다는 것.
서울 모 지역에서는 여성들을 상대로 입당원서에 도장을 찍어주는 대가로「퍼머·세트」권 1장씩을 주었다는 시민제보도 있었다.

<지적면모 알리는 책 광고>
○…유권자에게 스스로를 알리는 기회가 적은 후보들에게 저작물을 과시하는 것은 자신의 지적면모를 알리는 좋은 방법.
자신을 「지식인 정치인」으로 부각시키기에 노력하는 손세일씨(서대문·민한)는 지구당 창당 「팸플릿」의 좁은 지면에「이승만과 김구」「인권과 민주주의」「한국 논쟁사」등 저서의 사진과 서평을 게재.
출판사를 경영하는 도봉의 김태수 후보(민한)는 역서「보수주의란 무엇인가」, 수필집 「잡초밭에 누워서」의 큼지막한 신문광고를 자신의 사진을 곁들여 여러 신문에 연일 내고있다.
경산-영천의 염길정 후보(민정)는 자신의 논문 등을 수록한「새 지평에 서서」, 울산-울주의 이규정씨(민농)는 수필집「새벽을 뛴다」, 강동의 민정당 후보 정남씨는 『「리더십」- 「히틀러」통솔력의 비밀』이라는 역서를 출간했고, 이종찬씨(종로-중구)는 조모인 이은숙 여사가 집안의 독립투쟁을 쓴「가슴에 품은 뜻 하늘에 사무쳐」를 펴냈다.
이밖에 「한글세대론」(정동성·민정), 「한국의 미래」(고문승·국민), 「촛불처럼 비누처럼」(고정훈·민사), 「통일을 민족의지로」(김철·사회), 「당신들의 아픔을」(김진배·민한), 「코메리칸의 낮과 밤」(김용태·민정), 「뉴스전망대」(봉두완·민정)등의 저서가 새로 출판되거나 신문·잡지에 새삼스레 광고가 나왔다.
이와는 약간 다르지만 얼굴과 이름을 「매치」시키기 위해 사진관마다 사진을 걸어두는 옛 수법도 다시 부활. 대구 남-수성구의 신진수씨(민한)는 대구시내 사진관에 얼굴사진을 걸어두고 있고, 서울 강서구의 사진관에 남재희씨(민정)의 사진이 걸려있다.

<구호 외치며 명함 돌리고>
○…연설회장 등에서 명함 돌리기는 금지돼있지만 여전히 성행. 대구 중-서구합동연설회장입구에서는 『×××밀어주자』『진짜야당은 ○○○』 이라는 구호를 큰소리로 외치며 운동원들이 명함을 돌렸다. 15일 금천국민학교서 열린 연설회장에서도 모 후보의 운동원이 입구에 서서 명함 건네기로 부산. 김해에서는 출마하지도 않은 민사당의 민 모씨가 『4년 뒤에 잘 봐달라』며 명함을 돌리기도 했다.
어떤 후보의 운동원은 자기후보의 연설을 녹음해서 다른 후보가 연설하는 도중에 높은「볼륨」으로 녹음을 틀어 이중효과(?)를 내기도 했다.
남녀대학생들을 동원, 연설이 끝나면「사인」공세를 하도록 하는「인기과시작전」도 많이 보였다.

<하루 60여 윷놀이판서 초청>
○…아직 관광철은 이른데 동네아낙네들의 단체관광나들이가 흔하다. 특히 날씨가 다소 싸늘한 탓인지 온천행이 압도적이다.
『대개 3박4일 일정으로 관광여행을 떠나는데 자담비용이 불과 4천 원이다. 그 돈으로 4일을 어떻게 지내겠는가. 나머지 비용을 누가 지불하는지 뻔한 게 아니냐.』강원도의 어느 민권당 후보가 개탄하는 실태다.
대구에서는 10명의 부인계꾼들이 온천에 가기 위해 모 당 후보에게 15만원의 지원금을 신청해 「허가」를 받았다. 한 정당관계자는 『당일치기 온천관광이 제일 싸게 먹힌다. 5천원, 1만원 줘야 큰 생색 안 나지만 관광「버스」타고 나들이하고 온천에 다녀왔다는 것을 유권자들은 큰 대접으로 생각한다』고 실토.
관광이 시작되기 전에는 지방마다 윷놀이바람이 불어 선거인선거 때부터 음력2월1일(3월6일)까지 근 한 달간 계속됐다. 윷판마다 선거운동원들이 차례로 얼굴을 내밀고 「상품」을 제공하는데 최고는 전기밥솥에서 비누 몇 장에 막걸리사발이 돈다.
경북 모 지역의 후보는 하루에 최고 60여 곳에서 윷놀이가 벌어졌으니 잠시만 와 달라는 「초청」을 받았다고 했다. 어떤 곳에서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 운동원이 오면 상품을 내기 쉽도록 윷판을 일부러 차리기도 했다는 얘기다.

<타 후보 불고기파티서 포식>
○…탈법득표활동의 가장 고전적(?)사례는 향응제공.
관악의 민권당 후보인 이길범씨는 15일 연설회에서『구내「T회관」에서 매일 모 당 후보 쪽이 주최하는 불고기「파티」가 열린다는 얘기를 듣고 본인과 당원 몇 사람이 「잠바」차림으로 바꿔 입고 찾아가 한사람에 4인분씩 포식하고 돌아봤다』고 주장하고 『나는 돈이 없어 오히려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밥을 얻어먹는다』고 공개.
그러다 보니 선거운동원과 지원인사들의 대접이 겹쳐 음식점들이 때아닌 대목을 맞았다.
관광철에나 붐비던 전주의 명물콩나물 해장국집이 선거운동원과 서울에서 내려간 지원인사들로 아침마다 초만원을 이루는 가운데 김태식 후보(민한)는 아예 음식점 앞에 서서 해장하러오는 유권자들에게 인사를 건네고있고 각 정당의 참모와 선거운동원들은 방1개씩을 차지하고 앉아 그날의 전략을 즉석 숙의. <한남규·김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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