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 세상을 말하다] 諧音<해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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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9호 27면

한자는 표의문자다. 상형문자도 포함한다. 그렇다고 원시문자는 아니다. 뜻글자는 소리글자와 다른 묘미를 갖는다. 갖가지 언어 유희가 가능하다. 해음(諧音)은 그 하나다. 발음은 같지만 철자가 다른 동음이철어(homophonous)를 말한다.

해음은 중국의 선물 풍속에 녹아 있다. 술은 중국어 발음으로 주(酒)다. ‘오래, 길게’를 뜻하는 주(久·구)와 같다. 술 선물이 상대와 오래 사귀겠다는 의미를 갖게된 이유다. 사과를 뜻하는 핑궈(蘋果)는 ‘평안하다’를 뜻하는 핑안(平安·평안)과 음이 비슷하다.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선물로 적합하다.

정치도 해음을 좋아한다. 중국 공산당의 목소리는 기관지인 인민일보를 통해 전달된다. 인민일보는 필명(筆名)을 해음으로 짓는다. 주요 칼럼인 중성(鐘聲·종성)은 종소리란 뜻이 아니다. 중국 공산당 중앙의 소리(中共中央聲)란 의미다. 인민일보 국제부가 집필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런중핑(任仲平·임중평)도 같은 경우다. 개혁 논조로 유명한 이 필명은 ‘인민일보 중요 평론(人重評)’을 해음했다. 중쭈원(仲祖文·중조문)은 중국 공산당 중앙조직부 문장(中共中央組織部文章)의 해음이다. 중쉬안리(鐘軒理·종헌리)는 중국 공산당 중앙선전부 이론국(中央宣傳部理論局)의 주장을 뜻한다.

1991년 황푸핑(皇甫平·황보평)이란 필명이 상하이시 당 기관지인 해방일보에 처음 등장했다. 당시 상하이에서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을 지지하는 학습조직이던 ‘황푸강 평론(黄浦江評論)’을 딴 이름이었다. 황푸핑은 보통 필명과 차원이 달랐다. 황(皇)은 푸젠(福建)성 사투리인 민남어(閩南語)로 받들 봉(奉)과 발음이 비슷하다. 푸(甫)는 도울 보(輔)와 같다. 즉 “인민의 명령을 받들어 덩샤오핑을 보좌한다(奉人民之命 輔佐鄧小平)”가 황푸핑의 속뜻이었다.

덩샤오핑 탄생 110주년을 맞은 중국이 추모 열기에 휩싸였다. 사상해방(思想解放)은 그의 최고 업적이다. 고정관념인 스테레오타이프를 버리란 뜻이다. 사상해방은 창신(創新)의 밑거름이 됐다. 그는 89년 천안문 사건을 철완(鐵腕)으로 진압했다. 이후 정치는 죄고, 경제는 풀었다. 덩샤오핑의 역사적 평가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xiao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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