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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선수 태업, 베테랑 부진…우승 후보 롯데의 몰락

중앙일보

입력

프로야구 최고 인기구단 롯데 자이언츠가 흔들리고 있다.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구단 등 구성원 모두가 어려움에 빠졌다. 올 시즌을 시작할 때만 해도 우승 후보 중 하나로 기대됐던 롯데는 21일 기준으로 45승1무54패(승률 0.455)로 5위에 머물러 있다. 지난 두 달간 지켜온 4위 자리를 두산과 LG에 한 번씩 내줬다. 4강 경쟁을 하는 가운데 뒷심이 가장 약해 보인다. 그렇다고 흥행에 성공한 것도, 롯데의 미래를 이끌 선수를 발굴한 것도 아니다. 갈등과 분열의 싹이 커지더니 몇 차례나 팀을 흔들었다.

최근 롯데의 이슈 메이커는 외국인 거포 루이스 히메네스(32)다. 한 달 동안 경기에 뛰지 않은 채 구단과 정면충돌하고 있다. 그는 태업 의혹을 받고 있다. 웨이버 공시(계약해지) 시한인 7월24일을 마지막으로 실전에 나서지 않는 중이다. 왼쪽 무릎 부상이 이유다.

키 1m92cm, 체중 127kg의 거구 히메네스는 시즌 전 큰 기대를 받았다. 5월까지 3할 중반의 타율에 홈런 11개를 때렸다. 화끈한 야구를 좋아하는 부산 팬들에게 최고의 스타였다.

외국인 선수 선발·관리 제대로 못해

그런데 6월부터 이상했다. 바깥쪽 공을 공략하지 못하면서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약점을 집요하게 공략당하자 스트레스를 받았고, 동료들과의 관계도 틀어졌다는 소문이 돌았다. 웨이버 공시 시한을 넘기자마자 히메네스는 드러누웠다. 롯데 구단이 파악하고 있는 그의 부상은 무릎 건염이다. 그러나 히메네스는 지난 12일 기자들 앞에 나타나 “무릎뼈에 구멍이 났다. 지금 무리하면 내 야구 인생이 끝난다. 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팀을 위해 주사치료 중”이라고 주장했다.

김시진(56) 롯데 감독은 “히메네스가 돌아와도 문제”라며 심드렁해 하고 있다. 지명타자 최준석(31)이 잘해주고 있어 히메네스가 1루수로 나서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박종윤(32)이 좌익수로 돌아야 한다. 전문 1루수인 박종윤은 외야 수비 때 실수가 잦다. 예전처럼 홈런을 펑펑 치는 히메네스가 아니라면 필요 없다는 것이다. 물증은 없지만 태업을 하는데 대한 괘씸죄도 더해진 것 같다. 이럴 거라면 7월에 히메네스를 다른 외국인 선수로 바꿨어야 했다.

외국인 선수는 팀 성적에 큰 영향을 끼친다. 상위권 세 팀 삼성·넥센·NC는 모두 외국인 선수들이 뛰어난 활약을 하고 있다. 선수 스카우트는 구단 몫이고, 현장 관리는 감독과 코치의 책임이다.

히메네스 사건으로 롯데의 외국인 선수 선발·관리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게 드러났다. 코칭스태프와 구단은 그를 잘 어르지도, 단칼에 내치지도 못했다. 아무리 1년 단위로 계약하는 외국인이라고 해도 롯데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이렇게까지 막 나가는 건 지나치다. 팀에 질서가 없다는 의미다.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의 힘겨루기

롯데는 5월 말 심한 내홍을 겪었다. 권두조(62) 롯데 수석코치가 갑자기 경질됐고, 그를 추천했던 구단 인사도 징계를 받은 것이다. 롯데 선수들 몇몇이 신동인 구단주 대행과 만나 ‘수석코치와 야구를 같이 하기 힘들다’는 뜻을 전해 이뤄진 조치다.

구단의 수장은 대표이사(롯데는 최하진 사장)다. 몇몇 선수들이 배석자 없이 대표이사보다 더 높은 구단주 대행을 대면하는 건 매우 이례적이다. 게다가 이 자리에서 인사 건의가 이뤄진 게 놀랍다. 이게 받아들여져 수석코치가 시즌 중 퇴진한 건 더욱 놀랍다. 롯데의 이런 소통구조는 스포츠계에 만연한 상명하복 문화에서 벗어나고자 기획됐다. 여기서 자유로운 소통문화가 만들어진 게 아니라 힘겨루기가 벌어졌다.

권 수석코치는 선수들 사생활까지 통제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들은 이에 반발했고 결국 이겼다. 이 역시 개인간 갈등구도로 볼 수만은 없다. 롯데 구단은 김시진 감독의 심복(心腹)이 아닌 구단을 대변할 인물을 수석코치로 임명했다. 그런 권 수석코치가 선수들과 충돌해 완패했다. 구단의 힘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그렇다고 김시진 감독의 권한이 강한 것도 아니다. 김성근(72) 감독이 SK에서 경질된 2011년 이후 각 구단은 감독의 권한을 축소하는 추세다. 구단이 선수 영입과 운영을 맡고, 감독은 현장 지휘를 한다. 임기가 짧은 감독이 아닌 구단이 중장기 계획을 세우려는 것이다. 미국 메이저리그 방식의 시스템이다. 2011년부터 3년 연속 우승한 삼성이 구단과 류중일(51) 감독의 역할을 잘 분리해 성공한 케이스다. 넥센과 NC의 운영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방향도 타이밍도 틀린 엉뚱한 투자

권한분리는 감독과 구단, 두 기둥이 각자 단단하게 서 있을 때 제대로 작동된다. 그렇지 않은 경우 리더십 공백이 생긴다. 재난에 가까운 위기를 맞을 때마다 롯데엔 컨트롤 타워가 없었다. 다른 팀과 싸울 힘으로 팀 내부의 각 주체들이 서로 대립하고 있다. 롯데 구단은 김시진 감독의 오른팔 격인 정민태 투수코치를 지난 21일 2군으로 내려보냈다. 구단이 감독에게만 책임을 묻는 모양새다.

이렇게 되면 선수들은 개인기록부터 챙기게 된다. 몸 던져 뛰어 봐야 팀이 이길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롯데는 여전히 4강 다툼을 벌이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미 그런 단계에 접어든 느낌이다. 이달 들어 강민호(29)를 비롯해 김성배(33)·정대현(36)·강영식(33) 등이 줄줄이 2군을 다녀왔거나 여전히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막판 순위싸움을 할 때 베테랑들이 주저 앉았다. 김시진 감독은 젊은 선수들을 테스트하고 있다.

제이 로이스터 감독이 부임한 2008년 이후 롯데는 프로야구 흥행을 주도했다. 2000년 이후 하위권에 머물렀던 롯데가 5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자 부산은 물론 전국의 롯데 팬들이 야구를 즐겼다. 팬들이 우승을 꿈꾸기 시작할 때 롯데 구단은 적극적으로 드라이브를 걸지 못했다. 이대호(32·현 소프트뱅크)와 홍성흔(37·두산)을 연달아 빼앗겨 공격력이 악화됐다. 투수 전문가 김시진 감독을 지난해 선임하는 등 마운드 보강에 애썼지만 나아진 건 별로 없다.

지난 겨울 히메네스와 최준석을 영입했고, 공격형 포수 강민호를 4년 총액 75억원에 눌러 앉혔다. 그래도 롯데 공격력은 중간 수준이다. 투자를 했으나 방향이 틀렸고,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때문에 롯데는 화끈한 공격 야구도, 냉정하게 상대를 옥죄는 독한 야구도 하지 못하고 있다.

롯데부진이 프로야구계 흥행 정체로 이어져

롯데는 표류하자 팬들도 방황하고 있다. 롯데 홈 관중은 2008·2009·2011·2012년 홈 관중 130만 명 이상을 기록했다. 경기당 평균 2만 명 이상이 몰린 부산 사직구장은 매일 축제였다. 그러나 롯데가 더 이상의 상승 모멘텀을 찾지 못한 데다, 특유의 화끈함마저 사라자자 팬들이 실망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롯데의 총 관중은 77만 명(평균 1만2000명)으로 전년에 비해 44%나 줄었다. 올해 홈 경기 관중도 평균 1만3000명 정도로 지난해와 다르지 않다.

롯데는 단지 9개 구단 중 하나가 아니다. 2000년대 초반 프로야구의 위기는 롯데의 부진과 맞물렸다. 롯데 야구에 불이 불자 2008년 이후 프로야구는 활황이었다. 전체 관중 715명을 기록한 2012년이 정점이었다. 이후 롯데의 성적과 관중이 떨어졌고 프로야구 흥행도 정체돼 있다.

2014년 프로야구는 극심한 타고투저(打高投低) 현상과 비디오 판독 도입 문제로 시끄러웠다. 미국으로 떠난 류현진(27·LA 다저스)과 윤석민(28·볼티모어 오리올스), 일본으로 진출한 오승환(32·한신 타이거스)을 대체할 스타도 눈에 띄지 않는다. 또 삼성의 독주를 막을 팀도 없다. 팀컬러를 잃은 롯데의 부진이 더 아쉬운 이유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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