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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거장들의 본고장서 「오페라」의 꿈을 키워|「이탈리아」의 한국인 유학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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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2천년 역사의 훈풍이 감도는 고도 「로마」의 하늘에 한국 음악도들의 꿈이 영글고 있다. 일찌기 「베르티」「풋치니」가 꽃피운 「오페라」의 본고장에서 본격적인 음악 공부를 하고 있는 한국의 젊은이들.

<미국·서독 위주서 벗어나>
「이탈리아」 특유의 「벨·칸토」 창법을 새로이 배우고 있는 이들이 10년, 20년 후 한국 「오페라」 무대에서 펼칠 새로운 기교가 흥미롭게 기대된다.
현재 「이탈리아」에는 57명의 음악도들이 「로마」「밀라노」「오시모」「페루자」「볼로냐」「파르마」「베로나」 등 7개 지역에 흩어져 공부하고 있다.
전공별로는 성악이 39명으로 가장 많고 「피아노」「오보에」「트롬본」「비올라」「바이얼린」 등 기악 계통이 14명. 작곡·합창 지휘가 각 2명씩이다.
「오페라」 음악은 역시 「벨·칸토」 창법이라야 그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인식이 한국 성악계에 깊숙이 침투하면서 과거 미국의 「줄리어드」나 독일·「오스트리아」 일변도로 유학했던 한국 음악도들의 연수 성향이 근래에 크게 바뀌어 이제 성악도는 상당수가 「이탈리아」 유학을 희망하고 있는 실정이며 기악 부문도 「이탈리아」의 높은 수준에 검차 눈을 돌리고 있다.
한국인의 시야가 그만큼 세계를 합하고 커진 것이다.
한국 성악도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학교는 「로마」에서 역사가 가장 긴 「산타·체칠리아」 음악 학교. 이 학교의 교수진은 세계적인 전·현역 「오페라」 가수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에도 「파울로·실베리」 선생은 한국인 제자를 가장 많이 두고 있는 교수다.
「실베리」 선생은 5천회 이상 「이탈리아」·미국·영국의 「오페라」좌 무대에 섰으며 한때 「소피아·로렌」과 영화 주연을 맡기도 한 원로 성악가 「바리톤」이다.

<기교 익힌 뒤 예술성 추구>
그의 제자인 이찬구씨 (32·「테너」·서울대 음대 졸)는 『독일이나 「프랑스」 가수들이 콧소리를 많이 쓰는 반면 「이탈리아」의 「벨·칸토」 창법은 가슴을 트듯 노래하는 것』이라며 『풍선을 바늘로 찔러 펑 터질 때 나오는 소리를 음악적으로 처리하는 것은 「이탈리아」 사람들만의 장기』라고 실명했다.
추계 예술 학교 교수로 있다가 유학온 심상용씨 (35·「베이스」·서울대 음대 졸)는 『「이탈리아」어는 모든 말이 모음으로 끝나기 때문에 말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고 음악적이어서 전 세제 「오페라」 가수의 3분의 2를 「이탈리아」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는 이유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성악의 특징은 먼저 「테크닉」을 중시하고 예술성을 그 다음 단계로 접근해가는 것이다. 때문에 음악에 대한 학구적 깊이는 미국이나 독일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나 「소리」 그 자체에 대한 기교는 단연 앞서 있다.
한국 학생들은 대부분 국내에 있을 때 일본·미국에서 공부한 선생에게 성악을 배웠기 때문에 「벨·칸토」 창법을 배우기가 특히 힘들다고 한다.
이상령씨 (31·「바리톤」·서울대 음대 졸)는 『지금까지 외국인으로서 「이탈리아」 노래를 느끼다가 실제 똑같이 해보려니 잘 되지도 않고 그들의 높은 수준에 좌절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실토했다.
이곳의 음악 교수법은 다원화되어 있다. 성악도에게는 「음악」을 가르치는 선생이 따로 있고 「소리」를 가르치는 선생이 따로 있다. 「피아니스트」도 독주자와 반주자를 구분해 교육시킨다. 「오키스트러」는 독자적인 활동을 하지 않으며 「오페라」에 부속되어 있다.
음악 학교의 수학 기간은 기악이 10년, 성악이 5년이다. 「피아노」의 경우 10년 중 8년은 연주 기술만 배우게 한다. 어릴 때부터 무리하지 않고 긴 안목으로 천천히 교육해야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교육관이다.
기악은 중학 졸업 후 입학이 가능하며 성악은 18세 이상 즉 변성기가 지나야한다.

<음악 열기 구석구석까지>
특히 성악은 개개인의 음질을 대단히 존중하며, 목소리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곡목을 선택해 배운다. 민상순씨 (31·「소프라노」·한대 음대 졸)는 『한국에서 고등학생 시절 「오페라」의 「드러매틱」한 노래를 부르고 뽑내던 것이 얼마나 무모한 것이었는지 모른다』고 했다.
한국 유학생들은 대개 국내에서 대학 또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창회나, 「오페라」에 출연한 경험을 갖고 있다. 때문에 이들은 5년 「코스」를 월반하여 2년에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이 많다.
정학수씨 (32·「테너」·서울대 음대 졸)는 『한국 유학생들의 공통된 고민은 처음 와서는 「이탈리아」의 18∼19세 학생들보다 잘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처지는 어떤 「벽」을 극복하기가 어렵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바텐더」도 아리아 불러>
그러나 유학생들은 이같이 두터운 현실의 「벽」을 자기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계기로 삼고 있다. 관객과 가수가 함께 즐기는 「오페라」의 진미는 관객의 수준이 어느 정도에 달해야한다.
「바」의 「바텐더」도 흥얼거리는 콧노래가 「아리아」의 1소절일 경우가 허다하다. 음악에 대한 교육 방송이 조직적으로 방영되고 「칸초네」의 열기가 일반 시민의 생활 구석구석에 스며 있는 「이탈리아」의 음악적 분위기를 맛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한국인 유학생들에게는 큰 결실일지 모른다.
한국인 유학생들은 생활비를 거의 본국의 송금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모두 빠듯한 생활을 하고 있다. 언어 장벽과 이 나라의 경제 사정으로 미국·독일처럼 「아르바이트」는 엄두도 못 내는 것이 큰 애로이기도 하다.
글 전육 기자
사진 양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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