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우중 "DJ정부가 날 제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김우중(78) 전 대우그룹 회장이 대우의 ‘기획 해체론’을 주장하고 나섰다. 김대중(DJ) 대통령 정부 경제팀이 자금줄을 묶어놓고 부정적인 시장 분위기를 만들면서 대우를 부실기업으로 몰고 갔다는 것이다. 이달 26일 발행되는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와의 대화록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북스코프)를 통해서다. 그가 그룹 좌초에 대해 언급한 것은 1999년 8월 대우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간 지 15년 만이다.

 김 전 회장은 경영 부실 때문이 아니라 금융 시스템 붕괴가 대우의 몰락을 불렀다고 했다. 그는 책에서 “대우의 유동성 위기에 대해 본말이 전도됐다”며 “대우의 잘잘못과 관계없이 자금 회수가 이뤄지면서 위기가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수출금융이 막혀 16조원이 급하게 필요했다. 금융권은 국제결제은행 건전성 지표를 맞추기 위해 대출금 3조원을 회수해 갔다. 외부의 여건 때문에 19조원을 조달해야 했다. 이것이 왜 ‘기업 부실’의 증거냐”는 것이다.

 김 전 회장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 추진했던 삼성과 자동차 빅딜(사업 교환) 무산, 급박한 워크아웃 진행 등에서도 DJ 경제팀의 ‘의도’가 있었다고 언급했다. 그는 “경제 관료들이 나를 제거하려는 ‘프로그램’을 갖고 있었다고 믿는다”며 “경제 관료들은 빅딜이 깨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사재 1조3000억원을 포함해 자산 13조원을 채권단에 내놓고 회생 작업을 할 때도 정부 호응이 미흡했다는 게 그의 얘기다. 김 전 회장은 “정부 측이 10조원의 자금 지원을 약속했으나 4조원밖에 주지 않았다. 이후 경제 최고 책임자들이 나와 대우에 대한 부정적인 발언을 쏟아냈다”고 덧붙였다.

 김 전 회장과 관료 간의 갈등은 양측이 다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헌재(70· 당시 금감위원장) 전 경제부총리는 회고록 『위기를 쏘다』(중앙북스)에서 “대우는 시장 신뢰를 잃어 붕괴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당시는 구조조정밖에 살 방법이 없다고 시장이 인식하던 때인데 김 전 회장은 ‘구조조정 대신 돈을 풀고 금리를 낮추라’고 공개 주문하는 등 정부 정책에 불만이었다”고 저술했다. 그러면서 “시장은 ‘대우가 구조조정을 안 하려고 한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대우는 자산 매각이나 외자 유치 같은 자구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사실 정부는 어떻게든 대우 사태가 악화되는 걸 막으려고 애를 썼다”고 반박했다.

 당시 경제수석이었던 강봉균(71)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2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DJ가 김우중 전 회장을 호의적으로 본 것은 사실”이라며 “당시 경제수석으로서도 대우가 위기를 극복했으면 좋겠다는 게 기본 입장이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의 인식이 안일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강 전 부총리는 “역대 정권에서 대우가 어려울 때 청와대에서 도와줘서 해결된 일이 많다”며 “대우는 부실이 많아서 무너질 것이라는 게 세계 금융시장의 대세 여론이었다. 금융시장에서 대우가 문제가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자금을 회수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차 매각에 대한 입장도 다르다. 강 전 수석의 증언은 이렇다. “대우가 삼성차에 가서 경영까지 한 달 했다. 그런데 김 전 회장이 삼성차를 인수하면 거기서 생산되는 모든 차량을 삼성이 사 가라고 그랬다. 상식에 안 맞는다.” 대우 해체 15년 만에 나오는 회고록 자체에 대한 불편한 시각도 드러냈다. 강 전 수석은 “만약 흑막이 있었다면 정권이 바뀐 뒤에 터졌을 것이다. 그런데 시빗거리로 표면화된 적이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한편 김 전 회장은 이르면 이번 주말(23일) 서울에 들어올 예정이다. 현재 미국 하와이에 머물고 있는 이 전 부총리 역시 다음 주 귀국한다.

이상재·구희령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