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5)<제72화>비 규격의 떠돌이 인생(43)처우개선 감사대회|김소운(제자=필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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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 시기를 전후해서 나는 꼭 죽었어야 할 고비를 너댓번이나 겪었다. 태평양전이 끝나기 1년 전, 한밤중에 베개머리에 떨어진 고사포탄의 파편으로-, 동경서 평북 영변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아까시」철교에서 탈선 전복한 「산요오혼셍」의 철도사고로-, 해방되던 해 정월 하순, 동경 「유라꾸쬬오」의 B-29 백서공습에서-, 모두 구사일생 아닌 천에 하나의 기적적인 요행이 나를 살렸다.
그 외에도 두어번 아슬아슬한 생명의 위기를 모면했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그것을 하늘이 내린 집행유예로 해석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슬기나 지략으로 살아남은 것 같지는 않다.
그 무렵 조선인의 환심을 사는 정책의 하나로 전에는 없었던 귀족 원의 의석을 비롯해서, 전반적으로 조선인 관리의 지위를 개선 우대한다는, 이른바 조선인 처우문제가 국책으로 결정되었다.
「고이소」총독과 중앙정부가 지혜를 짜고 합해서 만들어진 시국대응책의 하나이다.
일본의 패색이 날로 짙어 가는 파장에 와서 처우를 개선한다는 것은 사후 약방문 격이지만, 그보다도 더 가소로운 것은, 소위 동포라는 사람들이「처우개선 감사대회」라는 깃발을 내걸고 동경으로 몰려와서 꼬리를 흔들고 수선을 떨고 하던 희극이다. 대의사 박춘금을 위시한 직업적인「내선융화업자」들의「적성표시」라는 것은 묻지 않아도 자명하다.
감사대회라면 어느 하루를 도시의 일각에 모여서 아부 아첨의 연설로 기세나 올리고「대 일본제국 만세!」나 부르는 것으로 알기 쉬우나, 이 감사대회는 자그마치 반년 동안을 두고 제국「호텔」에 진을 치고 욱실거리는「롱·런」(장기공연) 이다.
어느 날 내게도 초청전보가 왔다. 초청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출두명령 같은 내용이었다. 지정된 저녁 시간에 청년 하나를 데리고 회장인 제국「호텔」로 가보았다. 등화관제로 어두컴컴하게 불을 가린 대 연회장에는 50∼60명의 낯선 인물들이 모여 있고, 역시 불려온 김을한씨 같은 아는 얼굴도 간혹은 보였다.
3분의1은 일본인인데, 그 일본인도 대개는 내무성 방면의 관리인 것 같았다. 처우감사대회의 준비위원회 비슷한 모임이라는 것은 사회자의 연설로 알았으나「감사」를 받는 쪽이라고 보아야할 일본관료까지 거기 한몫 끼어 있다는 것은 마치 고사 지내는 무당과 터주대감이 한자리에 앉아있는 꼴수라 야릇하기 그지없었다. 「혹까이도오」에서 온, 「규우슈우」에서 온「융화대표」들이 여기저기 제자리에서 일어나 뭐라고 한마디씩 지껄이고, 박수가 터지고 한다. 그러자 그중 하나가「조선지식인 타도론」을 늘어놓았다.
『-만주로, 북지로 가는 황군의 군용열차가 경부, 경의선을 지날 때면, 들에서 농사하던 농민들은 허리를 굽히고 열차 쪽에 절을 합니다. 천황폐하의 적자라는 자각에서 성전완수를 충심으로 기원하는 그 농민들의 순박한 충성이야말로 눈물겹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글줄이나 읽었다는 소위 지식인이란 분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자들은 마지못해 겉으로는 따라오는 척 해도, 속으로는 십중팔구 딴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내선융화를 저해하고 그르치는 이런 따위 지식인은 문자 그대로 삶아도 구워도(니떼모 야이떼모) 먹지 못하는 망종들이라고 봐야합니다.』
대 웅변이 끝나자 한참동안 박수소리가 요란했다. 내가 앉은 식탁 맞은 편에「다께우찌」라는 내무성 관리국장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죽내씨와는 그 며칠 전, 어느 일문지의 기획으로 대담을 같이 한 일이 있어 얼굴을 알고 있었다. 대담하던 날 첫 인사 뒤에, 관리국이면 뭘 하는 데냐고 물었더니, 척무성이 없어지면서 내무성의 일국으로 새로 생긴 것이라는 대답에, 나는 관리국이라 길래 저금관리국으로 알았다고 해서 한바탕 웃은 일이 있다.
구면인 그 죽내 국장에게 나는 말을 건넸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 저 양반의 연설을-. 몹시 조선 지식인을 미워하는 모양인데, 농민만으로 정치를 하려드는 것은「볼셰비키』의 방식이지요. 어째 공산국가에 와서 정치강의를 듣는 기분인데요….』
일본인이 하는 소리라면 또 몰라도, 명색 내 동족의 입으로 그런 말이 나온 데 대해서 나는 얼굴이 뜨거워 잠자코 있을 수가 없었다.
나지막하게 죽내씨에게만 한말인데도 곁에서 듣고있던 어떤 일본인 친구가 『긴상, 그 말씀을 여러분께도 좀…』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자 또닥또닥하고 몇 사람이 손뼉을 쳤다. 나는 도리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무슨 조선 지식인의 대표라는 것은 아닙니다만, 지금 말씀한 분의 논리에는 약간 이의가 있습니다. 노동자나 농민은 본래 권력 앞에는 약하게 마련입니다. 마음에 있건 없건 하라면 하라는 대로 따라갑니다. 이것은 비단 조선의 농민대중뿐 아니라 어느 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지식층은 그렇지 못합니다. 거기는 비판이 있고, 의견이 있습니다. 그 비판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정치, 지식인이 따라갈 수 있는 정치-, 그것이 성공한 정치요, 참다운 정치라고 이 사람은 생각합니다. 따라오지 않으니 괘씸하다-, 망종이다-, 그렇게 한 마디로 판정할 수 있다 면야 천하에 정치 같이 쉬운 것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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