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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학자금만은 걱정 없다|자립터전 굳힌 항운노조 목포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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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목포=이창호·채흥모기자】「뚜-」뱃고동 소리에 멀리 수평선너머 갈매기가 난다. 유달산과 삼학도의 고장 목포항. 올해로 개항83년을 맞는 목포항에서 하역작업을 천직으론 삼는 2천4백여 근로자들의 일과는 하루종일 바다 위를 날며 물고기를 잡는 갈매기의 그것처럼 고달프다. 그러나 이들 하역근로자들은 지난7년 동안 개미처럼 열심히 일해 모은 기금으로 경제자립을 이룩, 풍요한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
장학회를 통해 자녀들을 대학까지 공부시키고 6억원의 마을기금을 적립하는 한편 부두근로자들을 위한 자체병원시설을 갖춘 의료보험제도도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마련했다.
전국 항운노조 목포지부 (지부장 최동추·52)의 회원은 인근 무안·신안·해남·강진군 등 1개시·10개군의 하역근로자 4백 여명을 포함, 2천8백여명.
전국에서 금산·인천에 이어 3번째로 큰 규모의 항운노조가 된 목포지부는 조합원들의 복지를 워해 73년4월 장학회를 설립했다.
유산처럼 물려받은 찌든 가난 속에서 곤란한 생활을 면치 못했던 하역근로자들의 자녀를 위해 장학회를 만들겠다고 하자 조합원들은 처음『하루 벌어 하루 먹는 인생들이 무슨 장학기금이냐』 『공부는 해서 무엇하냐』 『간부들이 기금을 유용 하려는게 아니냐』며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장학기금 설립을 주장했던 지부장 최동추씨와 간부들은 조합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눈물로 호소했다.
『우리는 비록 못 배워 이 고생을 하지만 자식들만은 잘 가르쳐야 할 게 아니냐….』
뜨거운 열성은 차츰 받아들여졌고 기금확보를 위한 갖가지「아이디어」가 조합원둘 사이에서 나오기까지 했다.
임금이 인상되면 첫 월급 때 인상폭만큼 적립되는 노동쟁의 기금을 장학기금으로 돌리기로 합의됐고「술 한잔 덜 마시기」「담배 한 등급 낮춰 피우기」등 절약「캠페인」도 벌여 기금을 늘려나갔다.
폐품수집만으로 한해에 1백만원을 모으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모은 장학기금이 75년 1천만원, 77년말 5천만윈, 내년말에는 1억원을 넘어섰다.
75년 중학교입학자녀 1백72명에게는 7천30원씩이, 중3년생과 고교생 2백75명에게는 모두 2백53만원이 지급됐다.
76년에는 야학등에서 공부하는 자녀들에게도 1만5천원씩 1백74명에게 학비보조를 하는 등 보조액수와 그 대상을 차츰 넓혀갔다.
80년도부터는 중학생에게 학비 전액을 지급해 하루6천∼7천원을 버는 하역근로자들의 자녀들은 중학교과정을 무상으로 공부할 수 있게됐다.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실시하자』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78년4월에는 목포시 이??동 대지1만평에 조합기금 9천만 원을 들여 연탄공장 2개를 세워 지난해부터 가동, 두 공장에서 연탄1장 파는데 1원씩을 장학기금으로 적립하여 지금까지 3천1백여만원을 모았다.
장학회육성이 성공하자 조합원자녀들의 향학열도 불붙어 73년 당시 2백50여명이던 중학생수가 이제는5백64명으로, 고등학생은 1백20명에서 2백여명으로, 대학생은 2명에서 26명으로 각각 늘어났다.
목포지부의 근로자복지향상운동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74년10월부터「1인 1통장 갖기 운동」과 함께 세운 마을금고도 벌써 6억원의 기금을 확보, 조합원들이 1백만원까지 무담보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또 76년8월 미국노총의 지원을 받아 목포시내에 세운 노동병원(건평 2백21평·2층건물)은 이제 의사4명, 병상50여개를 갖춘 현대식 종합병원으로 성장했다.
조합측은 지난해 11월부터 조합원들이 소속된 흥일운수 등 4개의 하역회사들과 의료공제회를 설립, 노동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조합원들은 치료비의 20%만 부담토록 하는 의료보험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이외에도 부둣가에 2∼4층 짜리 종합휴게실4동을 건립, 조합원들의 오락시설로 활용토록 했다. 이제 목포항의 하역근로자들은 7, 8년 전 자포자기했던 자신의 모습을 깨끗이 잊고 벅찬 내일의 꿈을 키워 나갈 수 있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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