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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총 인사 앞둔 각 기업 표정|"회전의자가 흔들흔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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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달 남짓 남은 주총을 앞두고 각 기업체의 임원들과 고참 부장들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이들이 입시를 불과 며칠 앞둔 수험생들 못지 않게 올 들어 유난히 가슴죄는 것은 작년의 경영실적이 무척 나빴기 때문이다.
이미 임원급 인사개편을 시작한 현대「그룹」은 「그룹」 계열사 중 작년에 큰 적자를 낸 현대자동차의 임원진을 대폭 개편한 반면 실적이 좋았던 현대건설은 수평이동에 그쳤다.
특히 작년 10월 현대자동차 부사장에서 현대종합상사 사장으로 영전됐던 윤주완 씨가 불과 2개월 여만에 사표를 내고 말았다. 현대자동차에서 한햇동안 발생한 3백50억원의 적자에 대한 사후문책이란 해석들이다.
또 작년에 경영실적이 부진했던 국제「그룹」도 19일 다른 「그룹」들에 앞서 서둘러 큰 폭의 임원진 인사를 단행했다.
국제는 2월 주총 때에 제2차 임원진 인사개편을 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체에서 이사로 승진하는 것은 곧잘 군에서 별을 다는 것에 비유한다.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치열한 입사경쟁에서 선발된 후에도 일류 대기업의 경우 15∼20년이 지나야 이사승진을 꿈꿀 수 있다.
물론 입사 동기생이나 가까운 선후배들보다 좋은 성과를 올려 「우수한 부장」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이사가 되면 좋은 대우와 많은 권한, 또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
삼성·현대·「럭키」·대우 등 대기업의 이사는 월평균 80만∼1백만원을 집에 가져갈 수 있다. 부장보다 월등한 격차다.
「보너스」는 성과에 따라 받기 때문에 그 격차가 너무 심하지만 연평균 4백%쯤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월급 외에도 판공비·전용승용차·여비서가 따른다.
부장과 임원은 사회에서 대우받는 격이 다르다. 요 몇 년 동안의 호황을 타고 각 기업에서 임원을 양산하는 바람에 희소가치는 줄었지만 그래도 임원의 「프리미엄」은 대단하다. 부장에서 임원이 되면 봉급·「보너스」·책상·자동차·판공비·전결권 등 24가지가 달라진다 한다.
임원 중에도 평이사·상무·전무 등의 직급이 있지만 그것은 장성 중에서 별이 하나냐 둘이냐의 차이 정도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15∼20년간 맹렬 사원으로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 판단·결정하고 그 결과를 볼 수 있다는 보람이다. 이사의 권한이 큰 만큼 책임도 무겁다.
기업의 세계는 냉혹하다. 적자라도 나면 이유야 어떻든 책임을 질 각오를 해야 한다.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 어느 임원이 적자를 내고는 『요즘 워낙 불황이 심해서…』 운운했다가 사주로부터 『장사란 불황때 잘 되는 것이 있고 호황 때 잘 되는 것이 있는데 그걸 잘 알아서 극복해야지 불황이라고 적자를 내면 누가 이사를 못하겠나』 하고 일갈당한「에피소드」도 있다 한다.
우리나라 상법은 이사 임기를 2년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경영실적이 나쁘면 임기를 채우지 못한다.
경영능력에 대한 측정은 영업실적이다. 그 심판의 날이 임박한 것이다.
현대의 총 직원 12만명 중 이사 수는 3백20명쯤 된다. 삼성은 총 직원 8만 여명에 이사 수는 1백95명이다. 이들 두 「그룹」은 직원 4백명 중에 이사가 한 명 꼴이 된다.
대우는 이사 수가 다른 기업에 비해 좀 많은 편이다. 총 직원 7만명 중 이사 수는 2백30명이니 이사 한 사람당 3백명이 약간 넘는 직원을 지휘하고 있는 셈이다.
중역진 개편은 우리나라에서는 절대적으로 「오너」(사주)의 권한에 속한다.
예년 같으면 이사 총수의 10%쯤이 새로 승진하거나 퇴진하고 10% 쯤이 수평이동 했다. 연 20%쯤이 움직이는 셈이다.
그리나 올해에는 통상적인 예상을 하기에는 불투명한 요소가 너무 많다.
각 기업들이 사업을 별로 늘리지 않았기 때문에 임원 의자가 늘지 않는데다 감량경영을 위해 경비가 많이 드는 임원을 줄이려 하기 때문이다.
임원 한 사람에 드는 비용은 연간 3천∼5천만원 정도로 잡고 있다.
특히 작년 경영실적이 워낙 나빠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할 판이다.
또 새 시대에 맞춰 기업에서도 인맥을 재정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래저래 금년 주총에선 문책인사를 포함하여 경영진의 대이동이 불가피한 전망이다. 임원들로선 시련의 계절이 다가온 것이다. <박병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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