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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주민과 경비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아파트」경비원이 내방객에게 강도를 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워낙 많이 일어나는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이 또 l건 생겼다고 해서 새삼스럽게 더 놀랄 것은 없지만「아파트」에 살고있는 사람이라 그런지 신경이 좀더 쓰여진다.『고양이한테 생선가게를 맡긴 격』이라는 식의 반응은 보이고 싶지 않다. 지급 이 순간에도 수많은「아파트」주민들의 재산과 권익 보호를 위해 박봉에도 아랑곳없이 성실하게 일하고 있는 대부분의「아파트」경비원들의 비중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잘못이야 물론 그 경비원에게 있겠지만 모든 범죄가 그렇듯 이번 사건도 그 근본적인 원인은 상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직업인으로서의 긍지를 갖지 못했고「아파트」주민들은 그가 긍지를 갖도록 협조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직업인으로서의 긍지를 갖지 못함은 비단「아파트」경비원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니라 육체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많은 직업인들의 공통된 취약점이다.
우리의 인습과 사회구조가 그들로 하여금 긍지를 갖지 못하게 끔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파출부에 대한 주부들의 그릇된 인식. 운전기사를 대하는 차주의 오만한 태도, 종업원들을 혹사하는 기업주들의 자세 등은 상호간 독립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질서와 긍지를 필연적으로 파괴하고 있는 요인이 된다.
그래서 어떤 파출부들은 자기가 일하고 있는 집에서 임꺽정의 「의적행위」만큼 통쾌하게 여기는 사라도 있다고 한다. 자기 상전의 추잡한 비밀들을 공공연하게 떠벌리고 다니는 운전기사도 있다.
「아파트」주민들을「아파트」경비원에 대해 어떤 질서를 보여주어야 하는가. 경비원이 마치 자기 집 머슴이나 되는 듯이 마구 개인적인 잡일을 시키는 주민은 없는가. 자기가「아파트」입구에 들어설 때 경비원이 90도 각도로 인사하지 않는다고 불쾌하게 여기는 이는 없는가 무슨무슨 때가 될 때마다 마음을 얼마나 위축시킬지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았는가. 어려운 여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긍지를 느끼면서 우리와 함께 호흡을 같이할 수 있도록 우리들은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어 보아야하겠다. 정충연<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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