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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기의 글로벌 포커스] 삼성 ‘자린고비 경영’ 득보다 실이 크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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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호 18면

삼성이 위기경영 모드로 들어갔다. 삼성전자의 2분기 실적과 스마트폰 판매량이 뚝 떨어지면서다. 이건희 회장의 장기간 입원도 우려를 키운다. 재계의 맏형 격인 삼성이 흔들리면서 한국 경제 전반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몇 가지 사실을 냉정하게 짚어보자. 먼저, 삼성은 진짜 위기를 맞았는가? 아니라고 본다. 삼성전자의 분기 영업이익이 10조 원에서 7조 원으로 떨어진 것은 어닝(실적)쇼크일 따름이지 위기는 아니다. 오히려 억세게 운이 좋았던 시절을 지나 정상으로 복귀하는 과정으로 해석하고 싶다.

분기 5조 영업이익이면 정상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삼성에 축복을 안겨줬다. 2009년부터 미국 애플이 멍석을 깐 스마트폰 모바일시대가 갑자기 열렸다. 하지만 금융위기 여파로 글로벌 IT·전자 업체들은 오합지졸이었다. 노키아·모토롤라·소니 등은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할 진짜 위기에 직면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세계 최고의 IT 하드웨어 실력과 반도체에서 나오는 안정적 자금을 활용해 단숨에 애플을 따라붙었다. 그런 단 둘만의 리그 덕분에 돈벼락을 맞았다.

2008년 이전 삼성전자의 분기 영업이익은 잘해야 2조~3조 원 규모였다. 연간 10조 원의 순익을 내면 베스트였고, 어닝 서프라이즈였다. 올 2분기에 어닝 쇼크였다곤 하지만 순익 규모가 여전히 과거와 비교해 2배 이상이다. 어닝 쇼크는 증시 애널리스트들이 기대치를 너무 키워 자초한 측면도 있다.

일러스트 강일구

스마트폰 제조 기술은 이미 범용이 됐다. 애플과 삼성의 스마트폰 영토는 중국 샤오미·화웨이 등 후발 추격자들에 상당 부분 내줄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세계시장 점유율은 33% 선에서 피크를 치고 현재 27% 선으로 떨어졌다. 전 세계 인구 셋 중 하나가 삼성 제품을 쓰다 넷 중 하나로 줄어든 것이다. 이게 불만인가. 여전히 놀라운 성과 아닌가. 신중한 애널리스트들은 삼성의 스마트폰 점유율이 20%, 분기 순이익은 5조 원 선까지 2~3년에 걸쳐 줄어들 것으로 내다본다. 현실적인 전망이다. 거기까지는 과도했던 실적이 제자리를 찾아 연착륙하는 과정으로 보고 싶다. 물론 그 밑으로 급속히 내려간다면 위기의 전조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삼성은 스마트폰이 시간을 벌어줄 동안 서둘러 미래의 신성장 동력을 발굴해 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삼성 경영진은 현 상황을 적절히 타개하고 있는가? 큰 틀에선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기대 이하의 실망스런 부분이 노출되고 있다. 최근 발표한 경영 쇄신책이 그렇다. 삼성은 임직원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매자며 임원 출장 항공석을 이코노미로 낮추고 직원 출장비도 깎았다. 실제 경비를 절감하려 그러진 않았을 것이다. 위기의식을 심어주려 한 조치로 풀이된다. 그러나 해외출장 여직원이 우범 지대 숙소에 묵게 되는 일까지 벌어지면서 조직이 술렁이고 있다.

국가든 기업이든 난관에 직면할수록 당차게 결속하면서도 유연함을 잃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 경직되면 될 일도 안 된다. 어설픈 위기의식은 조직의 사기를 떨어뜨려 진짜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물에 빠진 사람을 보면 적잖은 경우가 자기 키도 안 되는 깊이에서 죽는다고 한다. 겁에 질려 허둥대다 지쳐 몸이 굳어버린 결과다. 물이 키 이상의 깊이라도 여유를 잃지않고 누운 자세를 취하면 몸은 뜨게 마련인데도 말이다. 요즘 삼성 임직원을 만나 보면 뭔가에 찌들고 쫓기는 듯한 기색이 역력하다. ‘힘들어도 한번 부딪혀보자’는 결기는 갈수록 줄어드는 느낌이다.

중간배당 동결도 아쉬움 남겨
주주 관계에서도 삼성은 어설펐다. 그룹의 경영권 승계 흐름과 최경환 경제팀의 배당 확대책 등이 맞물려 증시 투자자들은 삼성이 배당을 높이는 등 주주친화적 경영에 나설 것이라 잔뜩 기대했다. 하지만 최근 삼성전자가 올 중간배당을 주당 500원으로 동결하면서 시장의 반응은 싸늘해졌다. 150만 원에 육박하던 주가가 단숨에 126만 원으로 밀린 주된 이유다. 삼성전자가 중간배당을 500원에서 700원으로 40% 늘려도 들어가는 돈은 755억 원에서 1055억 원으로 300억 원 늘어나는데 그친다. 자산운용사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에 300억 원은 껌 값 아닌가. 그것만 썼어도 투자자들은 ‘역시 삼성’이라고 손뼉을 쳤을텐데, 시장과 소통법을 모르는 것 같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은 임직원에게 위기의식을 끊임없이 불어넣었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곤 다 바꾸라’고 했다. 이는 용기와 도전정신을 자극했다. 임직원들은 이 회장의 진정성과 솔선수범을 믿고 따랐다. 이 회장은 경영이 어려워도 직원들의 창의력과 사기를 올리고 인재를 모으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주주들에겐 배당을 많이 주진 못했지만 통 큰 투자로 기업가치를 올려 확실히 보상했다. 이 회장이 지금도 경영을 지휘하고 있다면 뭔가 다른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까.

김광기 이코노미스트·포브스 본부장 kikw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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