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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사회에 사는 우리…"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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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사회들 안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순교자들의 모범은 많은 것을 일깨워 줍니다.”

16일 오전 10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순교자 124위 시복미사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두 시간 동안 거행됐다. 100만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진행된 미사는 방송과 인터넷으로 전세계에 생중계됐다.

이날 미사에서 고(故) 윤지충 바오로 등 우리나라 124위의 순교자들이 천주교 복자로 시성됐다. 교황은 “순교자들의 유산은 이 나라와 온 세계의 평화를 위해, 진정한 인간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이바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복자(福者)는 ‘복된 지위’로, 성인의 전 단계다. 거룩하게 살았거나 순교한 사람을 의미한다. 이번 124위 복자들은 대부분 19세기 신유박해 시절 초기 순교자들이다. 윤지충 바오로는 유교 제사를 거부해 박해받은 조선의 첫 일반인 순교자다.

교황은 시복미사 강론에서 “막대한 부요 곁에서 매우 비참한 가난이 소리 없이 자라나고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사회들 안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순교자들의 모범은 많은 것을 일깨워 준다”며 순교자들의 교훈에 대해 말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어려움에 처한 형제자매들에게 뻗치는 도움의 손길로써 당신을 사랑하고 섬기라고 요구하시며, 그렇게 계속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고도 말했다.

시복 예식이 끝난 뒤 한국 신자 대표들이 기도를 바쳤다. 예수의 최후의 만찬을 기념해 빵과 포도주를 바치는 예물 봉헌도 진행됐다. 서울에서 커피 전문점을 운영하며 지난 20년간 하루 첫 매상을 가난한 이를 위해 기부해온 신도가 예물 봉헌자로 선정돼 교황 앞에 섰다.

예수의 몸을 받아 모시는 영성체 예식이 진행됐고, 교황의 기도에 이어 염수정 추기경이 한국 천주교회를 대표해 교황의 시복식 주례에 감사 인사를 드렸다. 교황의 축복을 끝으로 2시간 20분간 진행된 시복 미사가 끝났다.

앞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전 9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카퍼레이드를 벌였고, 중간에 차에서 내려 세월호 유가족 '유민 아빠'를 품에 안았다.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 고(故) 김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47) 씨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 34일 째인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교황을 직접 만났다.

9시 30분쯤 광화문 광장 왼편을 돌던 교황의 차가 갑자기 멈췄다. 차는 이순신 동상 앞에 멈춰 섰고, 교황은 차에서 내렸다.

이곳에는 세월호 유족 400여 명이 모여 있었다. 차에서 내린 교황은 김영오 씨 앞으로 다가섰고 김씨는 “다시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도와주십시오. 우리를 잊지 말아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김씨는 노란 봉투를 건네며 “이 편지를 가져가 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 씨가 직접 쓴 편지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는 교황의 손에 입을 맞췄다. 교황은 김씨가 건넨 편지를 받아 흰색 수단(사제복) 안쪽에 넣고서는 그를 품에 안았다. 그러자 주위의 세월호 유가족들은 연신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교황은 그들이 내미는 손을 잡아주고는 다시 차에 올랐다.

또 교황은 17일 세월호 희생자인 단원고 학생 이승현 군의 아버지 이호진(56)씨에게 세례를 주기로 했다.

교황은 전날인 15일에도 교황은 세월호 유가족 10여 명을 만났다. 이들은 “'진상규명을 위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해야 죽어서라도 아이들을 떳떳하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실종자 10명이 있는데, 가족들이 꼭 찾을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는 내용의 이야기를 했다.

이들은 교황에게 “서울 광화문에서 단식 농성 중인 김영오 씨를 시복미사 때 한번 안아달라”고 청했다. 교황이 이들의 부탁을 기억했다가 김씨를 끌어안은 것이다.

이날 교황은 시복식 전 40여분간 이어진 카퍼레이드에서 신도와 시민들에게 일일이 손을 흔들어 주고, 환호하는 이들에게 미소로 답했다. 중간 중간에 10여 차례나 어린이를 들어 안고 머리에 입을 맞추거나 쓰다듬었다. 놀라 우는 아이를 보고는 웃기도 했다.

운집한 신도들은 이런 교황의 모습을 보며 두 손을 모아 기도하거나 손수건을 흔들었다. 감동에 북받친 듯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다.

온라인 중앙일보
영상 최효정 기자

[사진 AP=뉴시스, YTN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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