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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종교 참모습 회복 안간힘-불교계 정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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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고요와 무색의 미동만이 감도는 서울 종로구 견지동의 불교 조계자 총무원-.
축재·폭력·엽색 행각 등 불교계 비리에 가해졌던 사회적 차원의 대수술을 마무리하고 새싹을 발아시키려는 조용한 움직임이 태동중인 이 곳은 당국의 불교비리수사가 시작될 때 송월주 총무원장 등 종단 간부들이 연행되어 간 현장이기도 하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단의 사령탑인 총무원은 이제 그처럼 붐비던 스님들의 발걸음도 뜸한 채 시급한 종단 정상화 작업을 서둘고 있다. 빠르면 새해 1월말까지는 종헌개정-종회의원선거-총무원 집행부 선출 등의 모든 종단 정상화 절차를 마칠 예정이다.
세인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60여명의 승려가 비리와 관련, 계엄당국의 수사를 받기 시작한 것은 10월 27일부터였다.
비리 관련 및 참고인 등으로 연행돼 조사를 받은 승려는 이서옹(전 종정) 윤월하(전 총무원장) 이범행(단학원장) 최월산(불국사 주지) 김서운 스님(동화사 주지)등 원로급을 포함한 금혜정·배송원 전 총무원장, 오연원(직지사 주지) 임원광(신흥사 주지) 서의협(은해사 주지) 김혜법(조계사 주지) 이도우(고운사 주지) 박명선(화엄사 주지) 장이두(법주사 주지) 이혜성(서울 도선사 주지) 유월탄(전등사 주지) 최원철(낙산사 주지) 최향운 승려(범어사)등.

<사회가 종교심판>
이밖에 한 「베스트셀러」의 저자로 이름을 떨친(?)정다운 승려 형제(본명 이등룡·이향봉)를 비롯, 정호수(강화 보문사 주지) 오법달(전 총무원 감찰부장) 이현신 승려(전 총무원 사회부장)등이 역시 비리와 관련, 조사를 받았다.
계엄당국의 수사결과 발표 내용(11월14일)은 무적증이면서도 어엿이 불교신문 「대한불교」사장직을 맡고 있던 김경우(부산 대각사 주지), 이혜성 승려가 각각 1백77억원과 17억원씩을 축재했다는 것 등이었다.
특히 신도는 물론 일반인들을 놀라게 한 것은 정모·이모 승려 등의 난잡한 엽색 행각-.
이밖에 깡패를 승려로 입적시켜 행동대원으로 삼았다는 임모 승려의 비행과 주지 자리를 2천만원씩에 사고 팔았다는 내용도 있었다.
당국은 비리 승려 및 관련 민간인·참고인 등 총 1백53명 가운데 승직에 있는 40여명은 종단에 이첩, 징계토록 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무혐의로 석방했다.
또 모든 축재재산은 종단에 환수토록 함으로써 일단 사회적 차원의 불교정화를 마무리지었다.
와해된 총무원 기능과 정화작업의 자체 마무리를 위해 발족한 조계종 정화 중흥회의는 당국으로부터 이첩된 42명의 승려들에 대해 ▲치탈도첩(13명) ▲제적(10명) ▲공권정지(17명) ▲견책(2명)등 종단적 차원의 자체 처벌을 내렸다.
치탈도첩으로 종단의 징계를 받은 승려는 이혜성 임원광 정쟁수 이등룡 등이고 유월탄 최향운 이자신 승려 등이 제적됐다.

<축재재산 종단에>
정화와 관련한 종교적 차원의 징계는 치탈도첩 승려 13명을 제외한 나머지 승려들을 1년 예정으로 서울근교 사찰에서 합숙시켜 「참회용맹정진」케 함으로써 일단락 지었다.
불교정화는 불교자체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했던 「거물급」들의 비리를 수술한 것.
다행히도 정화과정에서 종단내분 당사자의 한사람으로 크게 주목받던 송월주 총무원장과 연행됐던 많은 원로급 스님들이 모두 「무혐의」로 밝혀짐으로써 「이미지」추락은 최악을 면했다.
비리승려 제거라는 「폭풍의 언덕」을 넘어선 조계종은 박탄성 정화중흥회의 상임 위원장을 주축으로 한 과도 집행부가 중심이 돼 종단내의의 여망에 따른 종단 정상화를 서둘고 있지만 정화의 상흔이 쉽게 가시지는 않을 것 같다.
불교계 정화는 잡초의 뿌리를 뽑기보다는 낫으로 줄기만을 베어낸감이 없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의 보다 내면적인 「종교차원의 정화」가 요구되고 있다.
제도적으로는 이판승과 사판승을 두는 단·교 양종의 이원체제를 시급히 확립해야 할 것 같다.
참신을 주장하는 단승들의 행정적 무능이 사판에 의해 보완되고 고질적인 종류내분의 원인이 되는 독선·문중 파벌의식 등도 하루속히 불식돼야한다.

<새로운 진로모색>
조계종을 중심한 각 불교 종단은 이번 불교계 정화를 계기로 새로운 진로를 찾으려는 활발한 움직임도 있다.
비구 대처승간와 대립 해소와 난립한 종파의 통합 등도 조심스럽게 모색되고 있다.
종교계 정화의 표본이 된 이번 불교 조계종 정화는 많은 교훈을 남겼다. 6백만 신도와 1만3천여 명의 승려라는 교세를 자랑해 온 조계종은 끝내 종교가 갖는 일반적인 신비성에 크게 먹칠을 하고 말았다.
특히 비극적인 사질은 인간과 사회정화의 향도적 역할을 담당해야할 종교가 오히려 반대로 사회로부터「정화」를 요구받았다는 점이다.
종교가 사회제도의 한 부분으로 존재하는 이유가 인간을 인간답게 살도록 인도하는데 있다고 볼 때 정화의 질타를 당했던 불교계 비리제거 같은 일이 다시는 없어야하겠다. <끝><이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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