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폴란드」에 개입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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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어느 약소국가의 운명이 강대국의 무력시위 앞에 유린되거나 무력하게 흔들리는 모습은 전후사의 무대에서 자주 보아 온 낯익은 장면이다. 56년의「헝가리」, 68년의「체코슬로바키아」, 70년의「아프가니스탄」사태가 그런 경우들이다.
「폴란드」노동자들의 자유노조운동이 장기화하고「카니아」정권의 사태수습능력에 회의가 일기 시작하자 소련은「폴란드」국경주변에 30개 사단의 대군을 집결시켜 놓고 있다.
세계의 이목은 「바르샤바」와 「모스크바」에 쏠려 있다. 「폴란드」에서 다시 「브레즈네프·독트린」의 미명아래 「체코슬로바키아」의 비극이 재연될 것인 가고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지난 5일 급하게 열린「바르샤바」동맹 7개국 수뇌회의는 일단 「폴란드」의 「카니아」정권이『자력으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음을 확신한다』고 선언했다.
개입태세를 완전히 갖춘 채로 최후의 순간에 「카니아」가 이끄는 공산당지도층에 위기수습의 마지막 시간여유를 준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들의 「코뮈니케」는「폴란드」가『「바르샤바」동맹회원국들의 형제적 연대와 지원을 확실히 기대할 수 있다』는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담고 있다.
그 말은, 만약에 혼란이 수습불능의 지경까지 확대되어 사회주의체제가 위험을 받으면「바르샤바」동맹군의 군사개인이 있을 수 있다는 경고다.
그런데 사태의 열쇠를 쥐고 있는「폴란드」노동자들의 자유노조운동은 아직은 수습보다는 확대 쪽으로 진행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지난여름 시작된 파업사태의 밑바닥에는 15「퍼센트」의「인플레」, 정부투자계획의 축소로 인한 실업률 증가, 전후 최악의 식량난, 2백80억「달러」의 외채의 압력 같은 경제문제가 깔려 있어 사태해결의 전망이 밝은 것만은 아니다.
노동자의 이런 이유 있는 파업사태가「폴란드」일대에 전반적인 자유화운동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어 사정은 더욱 어렵게 돌아간다.
영국의「타임즈」지 사설은「폴란드」의「이데올로기」상의 이단이 허용한도를 넘을 때가 아니라 동구에 대한 군사적인 통제가 위협을 받는다고 판단할 때「폴란드」에 군사개입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실 소련은「체코슬로바키아」나 「아프가니스탄」에서보다 「폴란드」에서는 신중한 자세로 사태를 관망하는 것같이 보인다. 그 이유는 「폴란드」의 넓은 땅덩어리, 전통적으로 반소 적인 국민감정, 「나토」동맹 측의 강력한 대소경고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소련이 개입하고 싶은 충동보다는 개입을 꺼릴 요소가 우세한 것 같다. 소련이 「폴란드」를 대군으로 침공하면 「아프가니스탄」사태 이후 겨우 명맥을 이어오는 동서 「데탕트」는 최후의 일격을 받는 결과가 되고, 미소는 아마도 모든 군축협상을 중단하고 「레이건」행정부의 발족과 함께 군비경쟁시대로 들어갈 것이다.
지금 벌써 국민총생산(GNP)의 14%(미국은 5%)를 군사비에 쓰고 있는 소련이 국민들에게 더욱 희생을 강요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폴란드」자유노조의 지도자들은 소련에 개입구실을 주지 않으려고 자제력을 발휘하고 있다. 소련의 군사개입이 국제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지금 소련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처사는 미국 및 서구선진국들과 함께「폴란드」의 경제난해결을 최대한으로 지원하는 것뿐이다.
「레이건」행정부의 발족을 앞두고 소련이 무력행사를 하는 것은「캐링턴」영국외상의 말대로「데탕트」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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