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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 잃은 문단…대화가 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문단의 판도를 가름하는 모임은 항상 열기를 띠지만 문인들이 사사로이 모여 문학을 이야기하는 장소는 없어져가고 있다.
문학단체의 모임과 달리 문인들끼리의 모임은 오늘의 문학에 문제점이 무엇인가, 무엇을 지향하고 무엇을 극복해야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논의하고 문학이 고독한 창조작업이긴 하지만 서로의 자극에 의해 문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정신의 터」라는 점에서 가장 바람직한 것이다.
그런데 80년대에 들어와 문인들은 친분관계에 따라 한두 사람이 모일뿐 문학을 이야기하는 만남이 거의 없다.
60년대와 70년대 중엽까지만 해도, 『창작과 비평』『문학과 지성』『한국문학』등 월간·계간문학지들이 몰려있던 서울청진동일대의 출판사와 주점에는 항상 문인들이 모였다.
『창작과 비평』의 염무웅씨(문학평론가), 『문학과 지성』의 이른바 4김으로 알려진 평론가 김병익·김주연·김치수·김현씨, 『한국문학』의 이문구씨 (소설가) 등이 중심인물이었고 이호철·박태순·김원일·김용성·김주영·이청준·김승옥·송영·이정환씨 (이상소설가), 고은·황동규·정현종·박재삼씨(이상 시인)등이 거의 매일 만난 사람들이었다.』
이곳에서 당시 나누어졌던 뜨거운 이야기는 상업주의 문학시비·제3세계문학·민족주의문학·참여 등의 내용이었고 모인 사람들은 격렬한 토론을 벌였다.
박태순씨는 『당시 문인들이 나누는 이야기 속에는「짜르르 울리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말한다」
80년대에 들어서 문인들의 만남이 적은 것은 70년대 후반 이후 우리문학의 침체와도 연결되지 않겠느냐고 보는 사람도 많다.
젊은 소설가 김원우씨는 요즈음 우리문학의 침체원인을「치열한 작가정신의 퇴조」에서 찾고 있다.
「쓸 이야기가 없다」든지「써지지 않는다」든지 하는 생각들이 팽배하고 일상성 속에 함몰되어 문학적 참조작업은 체념하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다.
작품에 대해 철저한「리뷰」를 해주는 문학지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이같은 상황은 간혹 주목할만한 작품이 나왔더라도 적절한 평가를 불가능하게 한다.
문학단체나 동인활동이 이러한 상태를 구원해주는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소실에 있어서의「작단」·「작가」동인·시의「반시」·「손과 손가락」·「청미」등 몇몇 꾸준한 활동과 모임을 갖는 동인을 제의하고는 대부분의 동인들이 지연이나 인연에 매여있다.
문인단체의 모임으로 문협이나 소설가 협회·시인협회 등이 주최하는 세미나가 있으나 이같은 모임은 친목에 우선이 주어지는 경우가 많고 본격적인 문학토론의 장으로서 열면 대화가 오가는 경우는 적다.
문인들이 문학을 위한 대화를 위해 모이는 장소가 없는 상황은 많은 문인들의 우려가 되고 있다. 그래서 일부 젊은 그룹과 지역에서 대화의 광장을 가지려는 노력이 있기도 하다.
젊은 그룹으로는「작가」동인들이 그런대로 뭉치는 편이다. 현대문학사에서 가 십 만나는데 서동훈·윤후명·정종명·김원익·유익서씨 등이다. 이들은 『문학사상』근처 주점「낙원」으로 곧잘 진출한다.
김성동·이외수·박영한 (소설가) 등이 파고다공원뒤「탑골」에 자주 얼굴을 내밀고 있다. 이들 젊은 그룹의 모임에는 평론가의 합류가 적어 아쉬움이 있다고 한다.
대구에서는 염무웅·김종철·최원식씨(이상 문학평론가), 이문열(소설가), 이성복·이태수씨(이상 시인) 등이 영남대와 대구 중심가 중앙로의 주점「외길」에서 자주 만난다. 짭짤한 멤버들이 짭짤한 얘기를 나눈다.
부산에는 김규태·이형기·허만하씨(이상 시인), 윤정규씨(소설가)등과 젊은층인「탈」동인들이 남포동 뒷골목주점「초원」에서 끈기있게 만난다.
광주에는 문순태·박양호씨(이상 소설가), 문도수씨(시인)등이 중심이 되어 남도예술회관 지하다방에 자주 얼굴을 나타낸다.
작고한 시인 김수영씨는 그가 남긴 산문 『요즘 느끼는 일』에서『뒷골목 구질구레한 목로집에서 값싼 술을 마시면서 문학과 세상을 논하는 젊은이들의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지 않는 나라는 결코 건전한 나라로 볼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문인들의 모임을 강조한 말로 오늘날과 같은 상황에서 되씹어 볼만하다. <임재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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