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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민석의 시시각각

남경필의 사상 첫 보수발 대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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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석
강민석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민석
정치부 부장대우

연…정? 경기도가 연정(聯政)을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무슨 연정…봉숭아 연정? 발 맞춰 가라면 더 엇박자를 내는 청개구리 같은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연정이라니.

 그래서 뭐, 연정이 좋은 거야? 이런 물음이 당연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잘 모르겠다’고 할 수밖에 없다. 워낙 한국정치엔 결과물이 없다.

 2005년에 한 번 세차게 연정 논란이 있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면 한나라당에 국무총리 자리를 비롯해 권력의 절반을 주겠다며 연정을 제안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단호히 사절하면서 없던 일로 끝났다.

 노 대통령은 퇴임 직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실패이유를 복기했다.

 “내가 난데없이 연정, 그놈 들고나와 가지고, 국민들이 ‘연정이 뭐요?’하게 만들었죠. 이해하기 어려운 걸 워밍업도 없이 불쑥 들고나와 버려서….”

 “(연정을 제안하면)상대방이 상당히 난처해지고 내부에서 갑론을박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런데 수류탄을 던졌는데 우리 진영에서 터져 버렸어요.”

 ‘수류탄 연정’의 실패는 예정된 수순이었는지 모른다. 연정을 ‘전략 카드’로 활용한 걸 상대가 눈치 못 챌 리 없다.

 그런데 지금 남경필의 경기도 연정은 출발선을 넘었다. ‘새누리+새정치연합’의 ‘대연정’(大聯政) 형태다. 대연정은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의 좌우 대연정처럼 이념이 다른 정당이 정권을 구성하는 형태다. 연정은 진보의 전유물이었다. 과거 민주당과 민노당 등이 소단위 지방정부에서 연정을 했다. 진보정당끼리 작은 동네에서 자리를 나눈 것이 아닌 이런 대연정은 처음이다. 경기도는 우리 인구의 4분의 1이다.

 남경필은 야당에 부지사 자리를 넘긴다. 보건복지, 환경, 여성가족 업무를 관장하는 자리다. 야당의 진보적 정책도 대폭 수용했다.

 연정의 목표는 뚜렷하고, 야심 차다.

 정치적으론 ‘1987년 체제’의 극복, 경제적으론 사회적 시장경제의 성공이다.

 87년 체제의 골격은 ‘대통령 5년 단임제+소선거구제’다. 노무현·남경필 연정 모델의 통하는 부분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연정 카드를 꺼낸 이유는 소선거구제를 바꾸려는 데 있었다.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면 영·호남에서 제2, 제3의 이정현이 나올 수 있다. 공천 고민도 해결할 수 있다. 소선거구제하에선 전략공천을 하면 사(私)가 끼고, 좁은 지역에서 국민경선을 하면 조직을 동원해 결과를 왜곡할 수 있다. 남경필과 11일 통화했다.

 -연정을 한다고 87년 체제가 바뀔까요.

 “연정은 권력을 분산해 힘을 합치는 협치(協治)죠. 혼자 다 갖고 있으면 무슨 힘을 합쳐? 연정을 하면서 싸움박질 안 하고 정치를 안정시키고, 사회적 시장경제에 성공하면, 선거구제 개편부터 권력분산까지 논의가 일겠죠. 연정은 원래 중·대선거구제와 다당제에 맞죠.”

 -사회적 시장경제?

 “사회적 기업을 제가 많이 키울 거거든요. 미국식 시장경제는 한계죠. 곧 경기도청을 이전하는데 3000억짜리 공사를 사회적 기업에 주려고 해요. 사회적 일자리도 많이 만들 겁니다. 노총, 경총, 중소기업, 자영업 하는 분들을 만나 대화를 하면서 얻은 교훈이 여야의 ‘프레임’, 혹은 이념만 벗어 던지고 보면 알맹이 차이는 별로 없다는 거….”

 -진보가 말하는 것보다 남경필이 사회적 시장경제를 말하는 게 나을 수 있겠네요.

 “사실 사회적 시장경제는 우파가 해 줘야 해요. 좌파…아니 안희정 지사 같은 진보는 시장의 활성화, 고용의 유연성을 얘기해 주고. 우파의 사회적 시장경제와 진보의 고용 유연성이 정반합(正反合)으로 만나면 그게 변화의 힘이 되겠죠.”

 걸음마도 못 뗀 노무현 연정과는 달리 남경필 연정은 현실이다. 보수가 조금 진보에 마음을 여니 연정이란 결과물이 나왔다. 진보와 보수의 날카로운 대립을 좀 무디게 만들 수 있다면 다행이다. 사상 첫 보수발(保守發) 연정이 책임을 안고 개문발차(開門發車) 한다.

강민석 정치부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