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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우한 어린 시절 보내고 TV통해 데뷔|『황야의 7인』에서 호평 대스타로 군림 암으로 간「스타」 「스티브·매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스티브·매퀀」(53)의 죽음은 그의 개성있는 연기에 매료당했던 세계의 「팬」들에게 슬픔을 안겨 주었다.
「매퀸」은 1930년 3월4일 미국 「미주리」주 「스레이터」에서 태어났다. 15세때 가출해 유전인부·선원생활을 했으며 52년 해병대에서 제대한 뒤엔 한때 「뉴욕」에서 「텔레비전」 수리공을 하기도 했다.
78년 CBS-TV 연속극 『방랑의 권총잡이』에 출연, 연기자로 「데뷔」했으며 같은 해 영화 『황야의 7인』에서 호평을 받아 본격적인 배우생활이 시작됐다. 대「스타」가 되기까지 「매퀸」만큼 인생의 쓴맛을 보아 온 배우도 드물다. 「매퀸」이 태어난지 6개월만에 부모는 이혼하고 어머니도 그가 6세때 구둣방 주인과 재혼, 그때부터 「매퀸」은 삐뚤어진 불량소년으로 자라났다. 가출한 뒤 4번이나 경찰에 체포됐고 중등교욱도 교도소감화윈에서 마쳤다.
초기의 그의 작품들은 청춘기에 보냈던 고독과 냉혹함이 깔린 독특한 분위기의 연기로 「팬」들을 사로잡았으며 이로 인해 그의 인기는 급성장했다. 그의 출세작은 68년에 제작된 『황야의 7인』인데 여기에서도 다지고 다져진 다부진 육체를 마음껏 구사, 「팬」들을 사로잡았고 그 뒤로 주로 「액션」영화를 중심으로 출연을 계속해 왔다.
이런 폭력물 외에도 75년의 『빠삐용』, 76년의『타워링』, 77년 『민중의 적』 등 대작에 출연, 그가 걸어온 파란의 인생을 그대로 영화에 재현했다.
「매퀀」은 55년 여우 「넬리·애덤즈」와 결혼, 남아를 두었으나 72년 이혼, 곧 「앨리· 맥그로」와 재혼했으나 실패, 금년 1월엔 「모델」 「바버러·민티」양과 3번째 결혼했었다.
「매퀸」은 최근 회생이 절망적이자 『「팬」과 친구들이 나를 위해 기도할 것』이란 말을 남겼다고 대변인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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