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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누가 이순신을 캐스팅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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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진중권 교수가 “영화 ‘명량’은 솔직히 졸작이죠. 흥행은 영화의 인기라기보다 이순신 장군의 인기로 해석해야 할 듯”이라는 글을 남겼다. 옆에서 묻는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휘말리는 걸 싫어하는 자는 비굴의 화법에 기댄다. “황희 정승을 모셔보자. 그분이라면 ‘졸작이죠?’라는 사람에게 ‘맞다. 그렇게도 볼 수 있다.’ ‘걸작이죠?’라는 이에겐 ‘물론 걸작이다. 천 만이 보지 않았느냐?’ 갑갑해진 3자가 ‘누구한텐 졸작, 누구한텐 걸작이라니 도대체 선생님의 판단은 뭐죠?’ 드디어 마지막 한 방. ‘사실은 네 말이 맞다. 누군가는 즐겁고 누군가에겐 지루한 것.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떠도는 거기가 문화시장 아니겠니?”

 진 교수가 한량하게 감상평을 올렸을 리 없다. 학생들에게 일종의 방학숙제를 낸 것이라 좋게 해석한다. “‘명량’을 보고 영웅과 영화의 상관관계를 각자 분석하라.” 이 말을 그답게 한 것 아닐까. 영화를 만든 김한민 감독도 서운치 않을 것이다. 진 교수는 독설의 화살에 꿀도 발라두었다. “활(감독의 전작 ‘최종병기 활’)은 참 괜찮았는데” ‘참’이라는 부사가 ‘참’ 달콤하게 배치됐다.

 나는 두 가지(영화, 실화) 캐스팅에 주목한다. 명량대첩 때(1597) 장군은 만으로 쉰두 살. 최민식(1962년생)이 지금 그 나이다. 그의 주름은 장군의 시름을 잘 표현했다. 역사에선 장군을 누가 캐스팅했을까. 이순신을 발탁하는 데 결정적 소임을 다한 사람은 『징비록』을 쓴 류성룡이다(왜군 적장 구루지마 역을 맡은 배우 류승룡과 혼동하지 말 것). 장군보다 세 살 많았던 영의정 류성룡은 선조에게 간곡히 추천한다. “저의 집은 이순신과 같은 동네였기 때문에 그의 사람됨을 깊이 알고 있습니다.” 맞다. ‘사람됨’이다. 역사적인 캐스팅 비화는 『선조실록』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봉준호 감독의 별명이 봉테일(디테일을 중요시)이라면 김한민 감독의 별명은 김본질이다. ‘본질’을 중요시한다. “‘명량’의 본질은 이순신 장군의 정신이다. 생사를 초월하는 상황, 두려움에 떨던 사람들이 기적과 같은 용기를 낸 그것.” 배우(최민식)도 화답했다. “그분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장군의 진심과 내면에 다가가기 위해 모든 걸 걸었다.”

 영웅의 본질은 애국심이다. 영웅심만으로는 영웅이 될 수 없다. 만약 그런 자가 있다면 장군은 뭐라고 꾸짖을까. 아마 이랬을 성싶다. “뜨고자 하는 자 반드시 가라앉을 것이요, 가라앉고자 하는 자 반드시 뜰 것이다.”

주철환 아주대 교수·문화콘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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