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음식의 온도 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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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호 31면

연일 계속되는 찌는 듯한 무더위와 함께, 어느새 불쑥 또 다시 찾아온 ‘복(伏)’. 습관처럼 나는, 10여 년 전 한국에서 처음 맞이 했던 복날을 떠올린다. “오늘 복날이잖아? 몸 보신 하러 가야지?!” 한국인 직장 동료 누군가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 한 마디에 모두들 너나 할 것 없이 “콜~!”을 외쳐댔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회사 근처의 산 속 ‘XX보신탕 전문점’.

드디어 내 앞에 후끈후끈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보신탕 한 그릇이 놓여졌다. 이 더운 날, 냉면 한 그릇 뚝딱 비우면 딱 좋으련만, 이건 뭐지? 한 번 더워 죽어보자는 뜻인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 더운 날, 이 뜨거운 걸 대체 왜 먹는 거에요?” 과장님 왈, 이열치열(以热治热)이라신다. 뜨거운 것으로 더위를 이긴다? 듣고 보니 말이 되네.

그러고 보니, 한국인들은 정말 뜨거운 것을 사랑하는 것 같다. 보글보글 끓는 채로 상에 오르는 각종 찌개류 및 탕류, 그리고 전골류들…. 하지만, 또 곰곰이 생각해보면, 한국인들은 서걱서걱 얼음이 씹히는 차가운 음식도 굉장히 좋아하는 듯 하다. 냉면, 얼음과 함께 나오는 각종 음료들, 365일 냉장고에 진열돼 있는 이름 모를 각양각색의 주류들을 보라. 어디 그 뿐인가. 추운 겨울, 식당에 가면 꽁꽁 언 몸을 채 녹이기도 전에 얼굴 가득 미소를 띄운 종업원들이 냉장고에서 갓 꺼낸 물병을 쟁반에 받쳐 들고 온다.

한 번은 아이와 함께 한국에 놀러 온 중국친구와 식당에 간 적이 있는데, 친구는 아이를 위해 오렌지주스 한 잔을 주문했다. 조금 후 얼음을 잔뜩 넣은 잔에 오렌지 주스가 담겨 나오자, 친구는 인상을 찌푸리며 종업원에게 한 마디를 날렸다. “좀 데워주세요!” 그 때, 그 종업원의 둥그래진 눈과 어리둥절해하던 표정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중국인은 차가운 음식을 싫어한다고 종업원에게 설명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어느덧 한국에서 생활한지도 10년이 넘어가지만, 이웃하고 있는 한국과 중국 두 나라의 음식문화가 너무나도 다름을 실감할 때마다 나는 매번 속으로 놀라게 된다. 뜨겁고 찬 음식 둘 다 좋아하는 한국인들과 달리, 중국인들은 온기가 도는 따뜻한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다. 복날이 되어도 너무 차갑거나 너무 뜨거운 음식을 먹지는 않는다. 중국 북방에 ‘초복(初伏)에는 만두를, 중복(中伏)에는 국수를, 말복(末伏)에는 전병과 계란볶음을 먹는다’는 말이 있다. 중국인은 따뜻한 음식을 먹어야 영양 흡수도 잘될 뿐 아니라 체내의 한기가 배출되어 더욱 더 건강해진다고 여긴다.

이처럼 너무나도 다른 두 나라의 음식문화는 한국인과 중국인으로 결합된 다문화 가정에서 더욱 더 잘 드러난다. 당장 나의 경우를 보아도 그렇다. 아침 식사시간 시원한 동치미와 뜨끈뜨끈한 찌개의 선명한 온도의 대비를 즐기는 내 남편과 바로 옆에 앉아 열기가 가신 볶음 요리를 먹는 나. 이렇게 우리 부부는 같은 식탁에 앉아 각자의 취향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각자의 음식을 각각 음미한다. 과일을 먹을 때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냉장고에서 갓 꺼낸 수박을 척척 잘라서 남편이 열심히 먹기 시작하면, 나는 20분 정도 수박의 냉기가 가시길 기다렸다 먹는다. 커피숍에 가서도, 남편은 1년 사계절 ‘아이스 커피’를 주문하고, 나는 365일 ‘핫 커피’를 마신다.

언제부터일까? 우리는 서로의 ‘다름’에 익숙해 가고 있고, 심지어 서로의 다름에서 비롯된 ‘생각의 차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뜨거움과 차가움의 양 극단이든, 따뜻함이든, 혹은 미지근함이든, 서로가 조화로운 하모니를 이루어 낸다면 한층 더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은, 너와 나의 ‘다름’이 있기에 더욱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천리 1979년 중국 선양(審陽)에서 태어나 선양사범대학을 졸업했다. 숙명여대 박사과정 수료. 한국에 온 뒤 주로 비즈니스 중국어를 가르쳐 왔다.

천리(陳莉) 국립외교원 전임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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